[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08>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7월 13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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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때 한왕 유방은 아직도 섭성(葉城)에 머물러 있었다. 섭성과 완성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공격을 퍼붓던 패왕 항우가 홀연 진채를 뽑아 사라진 것을 보고 사람을 풀어 알아보고 있는데 문득 북쪽 성고(成皐)에서 달려온 사졸 하나가 알렸다.

“항왕이 갑자기 성고를 들이쳐 성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성을 지키던 장졸들 가운데 몇몇은 어렵게 형양성으로 숨어들었으나,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한왕은 놀랐다.

“성고가 적에게 떨어졌다면 형양은 더욱 위태롭게 되었구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그렇게 탄식하면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 자리에 있던 장량이 대답 대신 그 사졸을 보고 물었다.

“항왕이 오기 전에 성고와 형양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에워싼 초나라 군사들이 느슨해진 틈을 타 형양과 성고가 손을 잡고 며칠 형양성의 에움을 푼 적이 있습니다. 그때 형양성 안으로 적지 않은 곡식과 병장기가 들어갔습니다.”

“그것이었구나. 나는 항왕이 팽월을 쫓아 간줄 알았더니….”

듣고 난 장량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걸 보고 한왕이 물었다.

“항왕이 팽월을 쫓아간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사람을 풀어 알아보니 팽월이 수수를 건너 초나라 땅 깊숙이 찔러들어 갔다고 합니다. 신은 항왕이 그 때문에 팽월을 잡으러 동쪽으로 떠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성고로 갔소?”

“성고와 형양성이 연결해 종리매의 에움을 뚫자 마음이 급해진 탓이겠지요. 대장군 한신이 한단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 그 전에 성고 형양 오창을 잇는 중원의 곡창지대를 초나라의 것으로 온전히 확보해두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서 군사를 형양성으로 돌리도록 합시다. 그 땅은 우리에게도 빼앗겨서는 결코 아니 될 땅이라고 하지 않았소?”

한왕이 기신과 주가, 종공을 떠올리며 그답지 않게 다급해했다. 그러나 장량은 한왕과 달랐다.

“그리 되면 대왕도 항왕이나 아무 다를 바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전국(戰國)을 이끄셔야지 끌려 다니셔서는 아니 됩니다.”

그렇게 한왕을 달래놓고 차분히 말했다.

“대왕께서 무관을 나와 완성과 섭성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전단을 여신 것은 그리함으로써 항왕을 이리로 불러내려 형양과 성고를 위태로움에서 풀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대왕이 전국을 이끌고 항왕은 거기에 끌려 다닌 셈이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왕은 원해서 성고로 간 것이 아니라 그곳의 형세가 심상찮아 이곳을 버려두고 그리로 달려갔을 뿐입니다. 따라서 대왕께서는 무턱대고 항왕을 따라 성고로 가셔는 아니 됩니다. 참고 기다리시다가 대왕께서 새로운 전국을 이끄셔야 합니다.”

“그럼 과인은 어찌해야 되겠소?” 한왕이 문득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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