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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5월 8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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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4050세대. 그들의 젊은 시절은 권위주의 정치에 대한 분노와 좌절의 시기였다. 반면 단군 이래 초유의 경제발전이 진행되던 때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의 안정감과 노후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초장 끗발은 거기까지였다. 세상이 바뀌면서 뒤패가 좋지 않다. 정년퇴직은 천연기념물이 됐다. 언제라도 직장에서 밀려날 각오를 해야 한다. 1인1표의 형식적 민주화는 정착됐지만 천민자본주의 못지않은 천민민주주의의 폐해도 절감해야 했다.
마르크스는 역사라는 기차가 굽잇길을 돌 때마다 지식인들이 차 밖으로 튕겨나간다고 했다. 역사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세대교체와 구조조정의 해일에 휩쓸려 억장이 무너지는 40대, 50대가 어디 한 둘인가. ‘제2의 인생 설계’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반면 남은 삶은 점점 길어진다. 고령화 추세로 이미 평균연령은 여성 80세, 남성 73세로 높아졌다. 평균연령에는 젊어서 교통사고나 병으로 사망한 사람도 포함된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오래 산다고 봐야 한다.
거칠게 설명하면 이렇다. 과거에는 60세쯤 은퇴해 10년 정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은 50세가량에 직장을 그만두면 약 30년의 삶이 기다린다. 4050세대는 그리 여유자금도 없다.
자식 걱정도 머리를 짓누른다.
50세 안팎이라면 대부분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몇 년 안에 사회로 나가야 하는 자녀가 있다. 그러나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딸이 학교를 졸업하고도 ‘백수’로 지내는 집이 부지기수다. 전통적 한국사회는 자녀가 부모의 노후 보험기능을 해주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 큰 자식 뒤치다꺼리까지 부모의 몫이다.
인간은 의식하든 않든 간에 자식을 통해 불멸(不滅)과 영생(永生)을 꿈꾼다. 징그러울 정도로 끈질긴 ‘유전자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연의 섭리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말라가는 아들딸을 봐야 하는 그 심정은 어떨까.
며칠 전 야근을 마치고 퇴근길에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이렇게 전했다. “특히 50대 승객 가운데 자신보다 자식의 미래 때문에 더 걱정하는 분이 많습니다. 정부에 대한 반감이 이 연령층에 강한 것도 ‘공허한 구호’는 넘치면서도 일자리는 제대로 못 만들어내는 무능에 대한 불만 때문이고요.”
‘잠 못 이루는 4050세대’의 고뇌를 잠재울 만병통치약은 없다. 그렇다고 팔짱 끼고 나 몰라라 할 일은 아니다. 심적 부담을 줄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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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나 국가나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급선무다. 쓰러져가는 회사에서 설령 출세하면 뭘 하나. 쌀독에서 인심 나고, 의식(衣食)이 족해야 예의를 안다는 옛말은 절반 이상의 진실을 담고 있다. 우리 자녀들의 미래도 상당부분 여기에 달렸다.
이 바탕 위에 치열함과 따뜻함의 결합, 경쟁속의 공존에도 눈을 돌리자. 국가와 사회, 가정에서 모두 나서야 한다. 기쁨과 즐거움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과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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