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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3월 27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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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편지를 공개해도 좋을지 한참 망설였지만 내용이 하도 애절하고 기막혀 외면할 수 없었다.
노인은 건축업을 하다 2년 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지금은 전철에서 껌팔이를 하는 떠돌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200자 원고지 20여 장에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 글씨체로 보아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세상을 곧게 살려고 노력해 온 분 같았다. 편지를 보내기까지 상당히 고심한 흔적도 엿보였다.
노인은 그동안 몇 번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아들의 집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왼쪽 수족까지 마비된 성치 않은 몸으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 다시 아들을 찾았다가 말로는 다 형언할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현관문을 열어 준 아들에게 “갈 곳도 없고, 찾아올 곳은 오직 너밖에 없으니 살려 달라”며 자식에게 할 짓은 아니지만 무릎을 꿇고 통사정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두 손을 모아 빌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죽지 않고 찾아왔느냐”며 자신의 멱살을 잡고 현관 밖으로 끌고 가 내동댕이쳤다는 게 노인의 설명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공부시켰는데 아무리 자신이 잘못이 많고 부족하다지만 어떻게 자식이 이런 멸시와 수모를 줄 수 있는지 세상이 원망스럽다는 것이다.
아들의 중학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게를 하는 친구한테 돈을 꾸러 갔다가 거절당해 할 수 없이 돈을 훔쳤다가 6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는 숨겨 둔 얘기까지 했다.
노인은 이승을 하직하기 전에 아들의 잘못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며 제발 산 사람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달라고 하소연했다. 편지를 소개하길 망설인 것도 행여 이 때문에 노인이 막다른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해서였다.
어쩌다 이들 부자간의 관계가 이렇게 됐을까. 사적으로 돈 문제나 다른 무슨 말 못할 곡절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치고, 아버지가 아들을 언론에 고발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이 현실을 그저 ‘이들만의 일’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충격적이다.
세상이 바뀌는데 고리타분하게 효를 들먹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사회 구성의 기초단위인 가족의 유대마저 깨지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혹시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공동체보다는 나, 국가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의 전도(顚倒) 때문이 아닐까.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제하지 못해 결국 개인과 가정의 파탄으로 이어지는 사회안전망의 부실에 눈감고 있는 우리에겐 그 책임이 없을까.
바람이 있다면 이 글을 보더라도 그 노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과 이제 아들을 용서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조금 더 큰 바람이라면 아버지가 자신 앞에서 그랬듯이 이번엔 그 아들이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빌었으면 한다.
이진녕 사회부장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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