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4년 비키니 핵실험 日어선 낙진오염

  • 입력 2005년 2월 28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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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조업이 시작되기 전인 이른 아침이어서 갑판 위에는 선원 서너 명만 나와 있었다. 1954년 3월 1일, 서태평양 비키니 환초 동쪽 167km 지점.

일본 참치잡이 어선 ‘제5 후쿠류마루(第五福龍丸)’ 선원들은 서쪽 멀리서 작은 섬광을 보았다. “마른번개인가, 조금 이상한데….” 한참 뒤에야 우르릉 하는 뇌성이 들렸다.

몇 시간 뒤,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검은 재가 갑판에 쌓이기 시작했다. 놀란 선원들은 조업을 중단하고 고향인 아이즈(燒津)로 향했다. 선원들은 이윽고 구토와 두통을 호소하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나중에 일본 수산청은 “미국이 비키니 환초에서 행한 수소폭탄 실험의 낙진이 이 배를 덮쳤다”고 발표했다. 미국도 책임을 인정했다. 실험현장에서 103km까지의 해역을 통제했지만, 풍속과 풍향이 돌연 바뀔 가능성까지는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9월, 선원 한 명이 사망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끔찍한 기억에 이어 또다시 핵의 피해를 보게 된 일본인들은 분노했다. 그해가 가기 전, 도호(東寶) 영화사는 ‘고지라’라는 영화를 선보였다. 남태평양의 핵실험으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괴물 ‘고지라’가 도쿄 시내를 덮친다는 영화였다. 2년 뒤에는 미국에서도 ‘괴수의 왕 고질라’가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고, 1998년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고질라’가 나오기까지 20편이 넘는 ‘고지라’ 또는 ‘고질라’가 선을 보였다.

비키니 환초가 ‘제5 후쿠류마루’의 비극 때문에 처음 세계인의 눈길을 끈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처음 핵실험이 실시된 것은 그 8년 전인 1946년이었다. 같은 해 패션디자이너 루이 레아드는 핵실험의 ‘충격’에 빗대 충격적인 수영복을 선보였다. 손바닥만한 상의와 하의가 구분돼 배꼽이 보이는 ‘지상 최후’의 수영복이었다. 그는 이 수영복을 ‘비키니’라고 이름 붙였다.

비키니 수영복과 ‘고지라’가 지금도 세계인을 매혹시키는 한편, 비키니 환초는 출입이 통제된 지역으로 남아 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와 국립암연구소에 따르면 네바다 등 미국에서 실시된 핵실험의 결과 50년 동안 미국에서만 1만5000명 이상이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태평양 지역 핵실험의 피해는 여기에 집계되지 않았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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