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박헌영 두번째 부인 별세

  • 입력 2004년 12월 15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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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한국공산주의 운동을 이끌다 북한 김일성(金日成)에 의해 처형된 이정 박헌영(而丁 朴憲永·1900~1956)의 두 번째 부인 정순년 씨(鄭順年)가 15일 새벽 경기 오산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박헌영의 유일한 아들인 원경 (圓鏡·63)스님의 생모다.

충북 영동군 포수 집안출신인 정 씨는 18살때인 1939년 신학문을 배우러 5촌 당숙을 따라 청주에 나왔다가 당시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5촌 당숙과 막역한 사이인 박헌영을 만났다. 박헌영은 당시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으로 대전교도소에서 6년 복역을 마치고 나온 상태였다.

정 씨는 박헌영과 결혼해 서울 인천 등을 돌아다니며 뒷바라지를 했으며 1941년 아들(원경 스님)을 낳았다. 그러나 곧 경성콤그룹 사건이 터지면서 박헌영은 지하로 잠적했고 이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원경 스님은 "제가 채 100일도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잠시 못보게 될 것 같다'며 어머니에게 민들레 문양의 금가락지 2개를 준 뒤 집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아들을 시어머니 손에 맡겨 생이별하고 1944년 재가했으나 역시 공산주의자였던 두 번째 남편도 한국전쟁 중에 죽었다. 아들인 원경 스님과 1963년 예산 수덕사에서 재회해 전국 곳곳의 사찰에서 지내왔다.

원경 스님은 "아버지를 만났을 때 어머니가 18살로 어리고 세상물정을 몰라 헤어질 때까지 아버지 이름을 남들이 '이정'이라고 부르니까 이(李)씨 인줄만 알았다"며 "저를 낳았을 때 찾아온 시어머니가 처음 알려줘서 아버지 이름을 알았고 당시에는 독립운동을 하는 줄 알았다가 해방이후에야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충남 예산 출신의 박헌영은 1925년 조선공산당을 창당했으며 48년 북한정권수립 후 부총리로 취임했으나 55년 12월 15일 김일성에 의해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이듬해 총살당했다.

원경 스님은 "아버님의 사형선고일과 어머님이 돌아가신 날이 공교롭게 일치한다"며 "비련하고 기구한 삶은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데로 가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빈소는 경기 평택시 진위면 봉천리 만기사. 발인은 17일 오전 8시. 031-664-7336

평택=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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