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종구]고개드는 ‘정치인 사면론’

  • 입력 2004년 11월 29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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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사면복권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수수에 관련된 정치인들을 사면해 주자는 게 요지다.

내놓고 말하지 않고 있을 뿐 정치권 전반에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는 듯하다. 비리 관련 정치인이 여야 모두에 걸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주 청와대에서 열린 3부요인 및 4당 대표 만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누군가 얘기를 꺼내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참석자들이 ‘아픈 마음으로’ 듣더라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만 하는 줄 알았더니, 에둘러 하는 말에도 ‘척하면 척’ 마음이 통하는 모양이다.

그날 만찬에서의 발언 내용은 이렇다.

“과거 문제로 일부 기업인과 정치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묵은 찌꺼기를 털고 갑시다.”

언제나 그렇듯이 명분은 국민화합이다. 그러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정치인을 사면해 주는 것과 국민화합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상세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말하는 당사자도 논리가 궁했는지 기업인도 사면 대상에 슬쩍 끼워 넣었다. 청와대도 민망했는지 만찬 브리핑에서 이 대목은 쏙 뺐다.

어느 ‘수감 정치인’은 정치권 곳곳에 자신을 풀어 달라고 ‘협박 반, 사정 반’ 한다는 말도 들린다. 호소 대상이 사법기관이 아니라 정치권이라는 점도 곱씹을 대목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경제난을 맞아 가족 끼니 해결을 위해 멀쩡한 사람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생계형 범죄’가 늘고 있다. 진정한 국민화합은 이 같은 생계형 전과자가 양산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국내 법률가의 87%가 ‘특별사면은 비리 정치인 구제 수단’이라고 믿는다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고법은 최근 사면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도 내렸다.

선거 때만 되면 검은돈을 거둬들이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면 용서해 주는 관행이 되풀이되는 한 부정부패 척결은 요원하다는 것을 정치권부터 깨달았으면 한다. 대통령이나 17대 국회 모두 ‘깨끗한 정치’를 내세워 당선되지 않았나.

윤종구 정치부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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