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공화국의 몰락’…포퓰리즘, 로마공화국 심장 쏘다

  • 입력 2004년 11월 26일 16시 58분


코멘트
공화국의 몰락톰 홀랜드 지음 김병화 옮김 487쪽 1만8000원 웅진닷컴
공화국의 몰락
톰 홀랜드 지음 김병화 옮김
487쪽 1만8000원 웅진닷컴
◇공화국의 몰락/톰 홀랜드 지음 김병화 옮김/487쪽 1만8000원 웅진닷컴

○“주사위는 던져졌다”

기원전 49년. 장군 카이사르의 군대는 루비콘 강 앞에 집결했다.

10년에 걸쳐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북부)를 평정한 그에게 로마 공화국 원로원은 ‘군 지휘권을 반납하라’며 소환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강물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카이사르는 고개를 들어 외쳤다.

줄리우스 카이사르 입상

“주사위는 던져졌다.”

5세기에 걸친 로마의 공화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카이사르의 군대는 순식간에 로마 시내를 휩쓸었다. 여러 세기 동안 이 사건은 서양의 역사학자들을 괴롭히는 난제였다. 왜 이 진화된 정치체제가 내부의 힘에 의해 전복되고, 1000년 이상 사장되는 운명을 겪었을까.

영국 옥스퍼드대 역사학 박사로 BBC 라디오 드라마 제작에 참여해 온 저자는 카이사르, 그의 라이벌 폼페이우스, 처세의 달인 키케로 등 당대 영웅들의 궤적과 로마사회의 분위기를 통해 그 단서를 찾아나간다.

한편 최근 이 책과 동시에 출간된 필립 마티작의 ‘로마 공화정’(갑인공방)도 공화국의 주요 인물과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연대기적으로 보여주어 도움을 준다.

○ 명예에 짓눌리다

카이사르 시대의 정치가이자 대연설가, 문장가였던 키케로는 당시 사회에 이상한 유행이 번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큰 돈을 들여 바닷물을 길어 생선을 기르고, 기른 생선을 잡아먹을 수 없다며 다시 돈을 들여 먹을 생선을 사고, 기르던 장어가 죽으면 눈물을 흘렸다. 키케로는 이들을 ‘피스키나루스’, 즉 ‘생선에 환장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키케로는 이 현상의 핵심을 이내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명망 있는 시민들이 생선 기르기와 같은 유치한 영역으로 퇴행한 것은 공적 생활과 의무라는 ‘공화국적 전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였다.

○ 인기에 오염되다

그리스에 살다 처음, 또는 오랜만에 로마에 온 사람들은 거리의 무질서함에 아연해하곤 했다. 미로처럼 얽혀 있어 언덕과 거대한 신전이 보이지 않으면 길을 잃기 일쑤였다. 정무를 책임지는 집정관이 두 명이고 임기가 1년에 불과하다 보니 ‘구획 정리’나 ‘시가 계획’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카이사르 시대로부터 한 세기 전만 해도 인기전술 혹은 ‘포퓰리즘’이 성공하기란 힘들었다. 한 예로, 기원전 133년 그라쿠스 형제가 공공 부지를 대중에게 나누어주고 옥수수를 시장가격 이하로 팔 때 시민들이 이들을 살해하며 내건 명분은 명확했다. “귀족 출신이면서 이런 제도를 생각하다니, 독재자가 되려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카이사르 시대에 야심가들은 호민관 선거에 입후보한 뒤 빈민가에 사는 평민들의 말투를 구사하며 환심을 사려 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포풀라레스(평민파)’라고 불렀다. 소탈하고 대중적인 태도로 인기를 누린 카이사르도 ‘포풀라레스’의 한 사람이었다.

○ 혼란보다 권위를 택하다

공화국은 공화국의 아들인 카이사르의 손에 무릎을 꿇었다. ‘한 사람에게 명예를 몰아주지 않는다’는 준칙에 맞춰 행동해 온 시민들은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을 수립하지 못하고 허둥댔다. 브루투스가 ‘공화국의 복구’를 선언했지만 한번 비굴함을 보인 원로원을 비롯해 누구도 명예를 제1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생존과 질서’였다.

전제적 인물인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가 수립한 2차 3두정치 체제에서 300명의 원로원 의원이 살해되거나 추방당했다. 브루투스의 공화파가 분쇄되고,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라이벌 안토니우스를 격파했다. 평화를 재확립한 옥타비아누스가 “이제 의무를 끝냈다”고 말하자 원로원은 “왜 국가 수호 의무를 포기하는가. 무정부 상태와 내전을 다시 겪게 하려는가”라며 그에게 황제의 관을 씌웠다.

시민들의 참여, 권력의 분점과 경쟁이라는 공화국의 이상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주권자이자 정치 행동의 목적이기도 한 시민들이 ‘포풀라레스’의 대중영합주의에 이끌려 그를 선택했고, 그의 전횡을 막아야 할 지배층이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이었다.

“자유를 너무 많이 누렸지만 끝내 노예가 됐다.” 공화정의 종말 앞에 선 키케로의 탄식이었다. 원제 ‘Rubicon’(2003년).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