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거기, 당신?’… 낯선 세상을 향한 희망의 목소리

  • 입력 2004년 11월 12일 16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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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당신?/윤성희 지음/280쪽 8500원 문학동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2001년 첫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을 내놓았던 윤성희씨(31·사진)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첫 소설집이 방 안에 홀로 내던져진 이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이번 책의 주인공들은 방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건다. ‘거기, 당신인가요?’

주인공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이야기를 하고 상처를 나누면서 서로를 보듬고 감싸 안는다. 따뜻하면서도 활기찬 정감이 전해져 오는 글들에서 세상을 보는 작가의 시선이 한결 성숙해졌음이 느껴진다. 윤성희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개 고독하고 가난하며 슬프다. 그러나 이들은 엄살을 부리거나 남을 탓하지는 않는다. 절망스러운 시대를 살지만 그런 삶에 휘둘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한다. 이런 절제가 윤성희 주인공들의 매력이다.

이 매력은 우선 그의 작법(作法)을 통해 두드러진다. 문장에 부사가 거의 없고 형용사도 제한적으로 사용하며, 간결한 장면묘사와 논리적 맥락을 암시만 할 뿐 건너뛰는 그의 문장은 삶의 부조리를 차가우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바라보게 한다.(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이 유머와 발랄함은 다소 엉뚱하다고 여겨지는 주인공들의 상황 설정들에서 정점을 이룬다.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의 주인공은 홀로 남겨진 쌍둥이 동생의 이야기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과 언니를 낳다 죽었고 언니 역시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아버지마저 가출한다. 홀로 남은 주인공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이들과 보물을 찾아 산을 오르고, 산에서 내려온 후 ‘함께’ 만두가게를 차린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다’는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며 번 돈으로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남동생을 유학 보낸 뒤 혼자 사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어느 날, 중고품 매장에서 노부부의 추억이 담긴 장롱과 텔레비전을 사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하여 마술도구를 위층 여자에게 선물하고 시청 광장 매점 여자에게 말을 건넨다. ‘하늘이 아주 좋네요.’

주인공들은 대개 이름이 없다. ‘나’ 혹은 ‘그녀’이거나 알파벳 ‘W’ ‘Q’ ‘H’다. 주변부 삶에 대한 은유다.

‘윤성희 소설의 궁극적 지향은, 고독한 존재들의 숨은 사연에 귀 기울이고…우리 시대 ‘주변인의 주변인’, 그들을 위무하는 데 있다. 윤성희의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위로하고 그 위로의 온기를 독자들에게 감염시키고자 한다.’(평론가 소영현)

‘어디선가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구두 뒤축이 닳을 거야. 그녀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기다란 그림자가 그녀 앞에 섰다. 가로등을 등지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거기, 당신인가요?(‘거기, 당신?’ 중) 하긴, ‘당신’은 항상 늘 ‘거기’ 있는 존재 아닌가.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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