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69년 과학저널 ‘네이처’ 창간

  • 입력 2004년 11월 3일 18시 39분


‘자연(네이처)! 우리는 그에게 둘러싸여 있고 그의 품에 안겨 있다. 떨어져 나올 수도, 그를 넘어설 수도 없다.’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 창간호가 1869년 11월 4일 나왔다. 권두언에서 동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자연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괴테의 아포리즘을 인용해 이렇게 창간의 의미를 부여했다. 창간자는 영국의 천문학자 노먼 로키어 경. 그는 50년간 편집장을 지냈다.

19세기에서 20세기, 다시 21세기에도 ‘네이처’는 최고의 과학저널로 군림하고 있다. 근대 과학혁명이 이뤄낸 성과를 과학자들에게, 또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 왔다.

저널에 실린 논문 가운데 과학사의 한 획을 긋는 것이 많다. 찰스 다윈은 1882년 최후의 논문을 기고했고 ‘20세기의 가장 큰 과학적 진보’로 꼽히는 제임스 잡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DNA 이중 나선구조’(1953)도, ‘복제양 돌리’(2000)에 대한 논문도 이 저널을 거쳤다.

발행 부수는 몇 만부 수준이지만 영향력은 수천만부 이상이다. 최전선의 연구 성과가 가장 먼저 실리고 세계 모든 언론이 이를 인용하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선 “논문이 ‘네이처’에 실리지 않고는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철저한 심사 과정은 권위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매년 약 8500편의 내로라하는 논문이 문을 두드리지만 실리는 건 10% 미만이다. 대부분 출판사에 도착한 지 이틀 이내에 반송된다.

다른 과학자가 논문을 읽고 비판하는 ‘동료 평가’는 유명하다. 비판을 받으면 저자는 논문을 수정하거나 추가 실험을 해야 한다. 대응이 없으면 논문은 반려된다. 한국인 과학자의 연구 결과가 실린 것은 지금까지 불과 50편 정도다.

이런 ‘네이처’가 최근 몇 년간 잇따라 구설수에 올랐다.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논문을 별다른 설명 없이 게재해 물의를 빚었고, 게재 논문이 표절된 것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네이처’에 논문이 실린다는 사실이 명예 외에도 너무 많은 것을 주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들이다.

오랜 기간 지속되는 권위가 막강한 권력으로 변질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본질적으로 순수함이 생명인 과학 분야에서도.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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