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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0월 8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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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워지고 사회 각계각층 구성원들의 불만과 요구가 커지면 지배계급 혹은 집권세력은 과거에 의존한다. 희망차고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끄집어내면서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드러내는 과거가 사실과 다르거나, 또는 사실의 일부만을 선별적으로 포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1970∼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했을 때 지배계급이 이런 식으로 과거를 남용했다고 지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 속에서도 세계 경제는 호황으로 치달았다. 미국과 영국 사회에는, 시장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며 대신 노동자의 복지는 국가가 책임지는 자유주의적이고 사회민주주의적인 ‘합의’가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거대 지배 서사’라고 표현한, 그 시대를 결정짓는 정신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낙관적 믿음’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으로 대표되는 사회 혼란과 70년대 석유파동 등으로 인한 경제 침체로 이런 합의는 깨졌고 자본과 노동의 갈등은 심화됐다. 또한 낙관적인 거대 지배 서사는 유지될 수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절대적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와, 국가의 권위와 위계를 중시하는 신보수주의자의 결합인 ‘신우익’이었다.
저자는 신우익이 자본주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기존 사회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이용했다고 주장한다.
대처 총리를 비롯한 영국의 신우익은 18세기 영국의 전성기였던 빅토리아 시대를 찬양하고 동경하는 연설과 글들을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사 전반을 신우익의 의제에 맞게 끌어다 썼다. 또 신우익의 지적 엘리트들인 대니얼 벨, 로버트 니스벳, 피터 버거, 진 커크패트릭 등의 학자들은 ‘공익(Public Interest)’ 같은 전문지를 통해 신보수주의의 전령으로 활동했다.
저자의 말대로 지배계급 혹은 집권세력은 자신의 구미에 맞도록 역사를 재구성해 현재와 미래의 이상을 제시함으로써 사회구성원을 통제하려고 한다. 그것은 때로는 성공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역사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는 우리 현실에서 이 책은 곱씹어 읽을 만하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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