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근대 개인주의 신화’…집단주의에 대한 반작용

  • 입력 2004년 10월 1일 16시 28분


◇근대 개인주의 신화/이언 와트 지음 이시연 강유나 옮김/424쪽 1만8000원 문학동네

서양 근대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네 명의 캐릭터로는 파우스트와 돈키호테, 돈 후안, 로빈슨 크루소를 꼽을 만하다. 로빈슨 크루소(1719년 작)를 제외하면 나머지 셋은 대략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서양 문학사에 본격 데뷔했다. 파우스트의 경우 1587년에 출간된 ‘파우스트 서(書)’, 돈키호테는 1615년에 완간된 ‘재기(才氣) 발랄한 향사(鄕士) 돈키호테 데 라 만차’, 돈 후안의 경우 1630년에 나온 ‘사기꾼’을 통해서였다.

이들은 ‘데뷔’ 후에도 수많은 모방작과 아류작을 통해 후대의 독자들에게 자기 존재를 각인시킨다. 20세기에 와서도 버나드 쇼의 ‘인간과 초인’(돈 후안), 토마스 만의 ‘파우스투스 박사’(파우스트)와 그레이엄 그린의 ‘몬시뇨르 키호테’(돈키호테), 미셸 투르니에의 ‘방뒤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로빈슨 크루소),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존 쿳시의 ‘포’(〃)에 이르기까지 네 캐릭터의 변신은 그치지 않으며 전대의 신화를 해체하는 재해석 속에 다시 태어났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불사조가 될 수 있었을까. 1957년 작 ‘소설의 기원’을 통해 “영미문학 연구의 현대적 고전 하나를 써 냈다”는 평가를 받은 영국 태생의 이언 와트(1999년 작고·전 미국 스탠퍼드대 영문과 교수)는 근대 이후 서양의 개인주의 전통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이들 캐릭터가 줄곧 각광받아 왔다고 풀이한다. 그는 ‘햄릿’의 경우도 이들과 같은 범주에 두고 분석하려 했지만, “더욱 대중적인 캐릭터를 분석하고 싶다”는 이유로 햄릿 대신 로빈슨 크루소를 넣었다고 설명했다.

돈 후안, 돈키호테, 파우스트는 종교개혁 이후 보수파의 반동이 강화되던 시기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욕망 속에는 모두 르네상스의 적극적인 개인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부정적 의미의 이기주의보다 성숙한 개념이다. 이들보다 늦게 나타난 로빈슨 크루소 역시 비슷한 사회적 맥락에서 태어났다. 종교개혁기의 뒤를 이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시대부터 네 인물은 가히 ‘슈퍼스타’가 되기 시작했다. 혼자 섬을 ‘경영한’ 로빈슨 크루소는 개인주의의 기초철학을 정의한 장 자크 루소에게 사랑받아 계몽주의 시대 최고의 스타가 되었고, 중상주의적 경향으로 인해 카를 마르크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마르크스와 정치경제학자들은 로빈슨 크루소의 상황에서 원초적 자본주의를 보았고, 그를 국제적으로 만들었다.

돈키호테도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의 낭만주의자들에게 사회적 평등과 이상을 위해 싸우는 순수하고 참된 투사로 여겨졌다.

이들 네 명의 캐릭터가 갖춘 (집단에 앞선) 개인의 우선성은 프랑스혁명과 미국 독립전쟁 등을 통해 더욱 널리 퍼졌고,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대중에게 서서히 그러나 아주 강력하고 긍정적으로 인식되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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