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지금이 우파의 위기다

  • 입력 2004년 9월 29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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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지금 좌파 우파로 갈라진 한국사회에서 요즘 잘나가는 쪽은 우파다. 지금까지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대부분 우파 단체 주도의 행사다. ‘국가보안법 수호 국민대회’는 앞으로 전국 순회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을 ‘좌파 정권’의 등장이라고 낙담하면서 코가 빠졌던 우파가 겨우 힘을 차린 것일까. ‘꼴통 보수’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이들이 하나둘씩 힘을 붙여 가는 연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이 큰 흐름을 갈라 버린 것 같다. 국보법 폐지보다는 개정 쪽의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1500여명 사회 원로들의 폐지 반대 시국선언이 발표된 이후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힘의 추가 ‘우향우’로 기울었다.

▼보수세력 결속한 까닭은▼

집권세력이 곧잘 쓰는 말이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국보법 폐지도 시대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6·25전쟁의 복잡한 상흔을 가볍게 보는 실수를 범했다. 단칼에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전쟁을 일으킨 북한 앞에서 스스로 무장해제하자는 것으로밖에 어찌 달리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원로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부르짖고 나선 이유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시국을 불안하다고 한 것도 이런 심리가 반영된 것 아닌가. 엊그제 9·28수복을 맞아 54년 전 중앙청에 휘날리던 태극기를 보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던 원로들에게 지금 눈앞의 현실은 참담했을 것이다. 누가 이들의 침묵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집권세력에서는 ‘우리가 민주화운동 할 때 탄압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자유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초점을 흐리는 ‘물타기’ 전술이다. 여기서 되물어 보자. 6·25전쟁 때 자유민주주의 말고 무엇을 지키겠다고 피를 흘렸단 말인가. 그들이 무너졌다면 지금의 체제 또한 살아남았겠는가. ‘민주화 공로’를 굳이 내세우고 싶다면 별도 논쟁의 장을 벌여라. 그래서 경우에 따라 면박을 줄 수도 있겠지만 여태껏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을 싸잡아 그렇게 뭉갤 수는 없는 법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분명히 있다. 이러고 보니 과거사 규명작업을 하겠다는 집권세력의 고착된 사시(斜視)를 읽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우파가 나름대로 힘을 모으게 된 데는 아이로니컬하게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도움도 컸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다. 힘 좀 얻었다 해서 우파는 지금처럼 가서는 안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기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 정권을 ‘친북 좌경’으로 몰아가면서 여론의 지지를 얻는 듯하지만 막상 민심을 이끌어 내고 결속을 다지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규탄하고 외쳐 대는 것만으로는 민심을 붙잡을 수 없다. 함성이 사라지면 다시 코 빠진 모습을 할 건가. 당장은 공감하는 규탄도 되풀이만 하다가는 어느 순간 면역이 생겨 시큰둥해지는 것이 민심이다. 결국 이러한 역할은 우파로 대변되는 보수세력을 안고 있는 한나라당의 몫이다.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오랜만에 30%를 넘었다고 하지만 집권세력에 대한 상대적 실망감이 옮겨 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 민심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처럼 여론 지지도의 등락폭이 극심한 곳에서 지금 우파의 목소리에 힘입어 지지도가 좀 늘었다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우파약진’ 언제까지 갈까▼

그런데도 의욕상실증에 걸린 당내 기류는 잇단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남의 불에 게 잡자’는 분위기다. 국보법에 대한 당론도 확고하지 못한 것 같고, 행정수도 이전에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민심을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눈치를 보겠다는 것인지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다. 언제까지 무기력증에 빠져 있을 것인가. 지금 같은 불안한 ‘우파약진’ 현상이 오래가리라고 보는가. 집권세력이 줄곧 내세워 온 ‘민주화 공로’가 이제 약발이 떨어지듯 우파도 단선적인 반대만 고집하다가는 같은 길을 걷고 말 것이다. 나는 오히려 지금을 우파의 위기라고 본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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