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용서’…용서는 가장 큰 수행

  • 입력 2004년 9월 10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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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설산을 오르는 티베트 짐꾼들. “진정한 승자는 자기 분노와 미움을 이겨낸 사람이다”라고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티베트 전문 포토그래퍼 올리버 폴미의 사진. 사진제공 오래된 미래
히말라야의 설산을 오르는 티베트 짐꾼들. “진정한 승자는 자기 분노와 미움을 이겨낸 사람이다”라고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티베트 전문 포토그래퍼 올리버 폴미의 사진. 사진제공 오래된 미래
◇용서/달라이 라마, 빅터 챈 지음 류시화 옮김/289쪽 9500원 오래된 미래

티베트 불교의 최고 지도자인 14대 달라이 라마는 1936년 중국

접경 탁처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라모 톤둡. 세 살이 되기 전에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출생한 지 10년 후 이 책의 공저자 빅터 챈이

홍콩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했고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동양학연구소 교수다.

티베트 사람과 중국인.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 인민군을 떠올리면

같은 배를 탈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달라이 라마가 보인 것은 말 없는 폭소였다.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하다 납치된 후 도망쳐 나온 챈이

1972년 히말라야 다람살라 구릉의 달라이 라마 은둔지를 찾아갔을 때

‘말 꼬랑지 헤어스타일에, 다 떨어진 쾌걸 조로 망토,

가늘고 듬성듬성한 염소수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달라이 라마의 웃음은 일상적인 것이다. 신비스럽다고 할 만한 유머감각 때문이다. 2002년 한국의 김용옥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 “당신은 위대한 사상가, 전 생애를 통틀어 많은 수행을 한 당신의 깨달음의 경험을 듣고 싶다”고 진지하게 말하자 달라이 라마가 이렇게 답하면서 크게 웃었다고 챈은 쓰고 있다. “내 육신은 이제 예순여섯 해나 묵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나는 매우 젊습니다.”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의 은둔지를 몸수색 없이

출입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인 챈은 30여년 간에 걸친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와 깨달음을 이 책에 옮겼다.

그 주제는 결국 ‘용서’로 귀결된다. 막연한 설교로서가 아니라

구체적 만남과 사연을 통해 얻게 되는 용서의 위대함이다.

티베트 승려 로폰라는 18년 동안 중국군 교도소에 갇혀

고문을 당하지만 달라이 라마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혹시 제가 중국인들을 미워하게 되지 않을까,

그들에게 자비심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북아일랜드인 리처드 무어는 열 살 때 시위 도중 영국군이 쏜 고무탄에 두 눈을 잃었지만 달라이 라마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누가 쏘았든 저는 그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했어요. 실명이 제 남은 생애를 지배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얼굴을 궁금해 하는 무어에게 얼굴을 만지게 했고 무어는 “참 코가 크시군요”라고 말했다.

‘용서’에 대한 달라이 라마 본인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우리를 상처 입힌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용서를 베풀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스승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내면의 힘을 시험한다. 용서는 우리를 지켜주는 힘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적이 아니라 자기 분노를 이겨낸 사람이다.”

세계적으로 테러와 이에 맞선 대테러 전쟁의 불바람이 불고 있고,

국내에서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증오가 양산되고 있지만

달라이 라마의 용서에 대한 신념을 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달라이는 몽골 말로 ‘큰 바다’라는 뜻이고, 라마는 티베트 말로

‘스승’이라는 의미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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