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1년 美 매킨리대통령 피격

  • 입력 2004년 9월 5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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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9월 6일 버펄로의 미국 박람회장에서 두 발의 총성(銃聲)이 울렸다.

총탄을 맞고 쓰러진 대통령은 저격범이 다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리고 아내를 걱정했다. “그녀에게 내 죽음을 어떻게 알려야 한단 말인가….”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는 대통령과 채 1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가 쏜 한 발은 대통령의 갈비뼈를 스쳐 지나갔고 다른 한 발은 복부를 깊숙이 관통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대통령은 처음에 기운을 차리는 듯했으나 이내 기력을 잃었다.

그는 ‘13일의 금요일 밤’ 의사들을 불러 조용히 말했다. “자, 이제 기도를 올려야 할 시간이오….”

피격 여드레 만이었다.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 남북전쟁에 종군했던 매킨리는 ‘고집 센’ 공화당원이었다. 산업자본의 편에 섰고 보호관세주의를 주장했다.

선거 때마다 막대한 정치자금을 모았던 매킨리. 그는 미 정치사에 공화당 시대를 열었으니 매킨리 이후 1933년까지 윌슨을 제외하고 6명의 대통령이 공화당에서 나왔다.

그는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의 승리로 세계제국주의의 ‘총아(寵兒)’로 떠오른다.

그해 2월 미국의 전투함 메인호가 쿠바의 아바나항에서 격침되자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했다. “메인호를 기억하라! 스페인을 지옥으로!”

미국은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을 얻었고 쿠바를 독립시켰다. “미국을 진정한 세계의 강대국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폴 크루그먼은 “부시가(家)의 전쟁이 그렇듯 스페인전쟁도 당시 ‘내환(內患)’을 ‘외우(外憂)’로 덮으려 한 혐의가 짙다”고 비판한다.

19세기 말 미국의 제국주의는 그 내부에 많은 ‘적(敵)’을 키우고 있었다. 급진적 사상가들이 전쟁과 징병제도에 격렬히 저항했다.

“테러는 이기적 동기가 아니라 ‘과잉(過剩) 헌신’에서 유래하는 폭력”이라고 했던가.

저격범 레온 촐고츠는 광신적 무정부주의자였다. 그가 사숙(私淑)했던 여성 아나키스트 에마 골드먼도 대통령 암살사건의 배후로 몰려 구속된다. 촐고츠가 그의 저서를 탐독한 탓이다.

국가를 ‘선(善)의 적’으로 간주했던 아나키즘.

그것은 테러리즘에 끊임없는 영감(靈感)이 되었으니, 아나키즘이 생태운동과 결합돼 새롭게 조명되고 있음은 아이러니가 아닌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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