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입단 10년만에 우승 이희성 5단 인터뷰

  • 입력 2004년 9월 3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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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부담을 벗어던지자 바둑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어요.”

입단 10년째인 이희성 5단(22·사진)이 지난달 말 제4기 오스람코리아배 신예연승 최강전에서 고근태 2단을 꺾고 우승했다. 입단 이후 첫 우승이다.

그는 1995년 만13세로 입단했다. 이세돌 9단이나 최철한 8단이 입단했을 때의 연배와 비슷하다. 그의 입단 당시 이창호 9단이 “주목할 만한 신예”라고 했을 만큼 기대주였다. 그러나 그는 이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기전 본선에 가끔 얼굴을 내미는 것에 그쳤다.

“입단을 빨리 한 만큼 10대 때 타이틀을 따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어요. 그 때문에 바둑 두기 전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바둑 내용도 좋지 못했죠.”

10대 후반에 이르자 초조해졌다. 2000년 이후에는 긴 슬럼프에 빠졌다. 바둑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은 더욱 초라해졌다. 자신감도 잃었다.

그의 별명은 ‘진드기’. 지독한 장고파인 그와 대국하면 승패를 떠나 종일 고생한다는 뜻에서 붙은 별명이다.

“자신이 없으니까 수를 잘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초반부터 장고를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제 바둑의 리듬을 깨뜨린 것 같아요.”

그는 지난해 마음을 비웠다. 10대 타이틀 획득의 꿈이 사라진 마당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을 다졌다. 성적도 서서히 나아졌다.

“사실 실력은 2000년 이후 슬럼프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요. 한 가지 다른 점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뿐이죠.”

그는 올해 최철한 8단과 박영훈 9단 등 쟁쟁한 기사들을 꺾었다. 자신감이 생기자 장고 버릇도 사라졌다. 혹시 이 장면에서 당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사라지면서 착수도 빨리 하게 됐다는 것. 제한 시간은 여전히 다 쓰지만 일찍 초읽기에 몰리지는 않는다.

“이번 우승으로 자신감이 더 커졌습니다. 이 느낌을 살리면 정상급 기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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