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 의장 ‘가해 세력’ 발언 옳지 않다

  • 입력 2004년 8월 20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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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과거사 규명과 관련해 한나라당을 ‘가해(加害) 세력’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표가 용공(容共)·친북(親北) 행위까지 포함해 조사 대상을 넓히자고 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의장은 “온갖 고문과 조작을 통해 가해를 했던 사람들이 가해 사실을 조사하면 바로잡아지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불안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어두운 과거사를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면서 조사도 하기 전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눠 재단하다니 이런 자의적인 역사 해석이 어디 있는가. 결국 집권측이 시도하는 과거사 규명작업이 현재의 정치적 잣대에 따라 ‘해답’을 미리 정해놓고 맞춰 나가는 방식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망국, 일제, 분단, 전쟁, 독재로 이어진 우리의 근현대사는 영욕(榮辱)과 공과(功過)가 겹쳐 있다. 제대로 조사하기 위해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이 필수다. 그런데 여권이 미리부터 ‘우리는 선(善), 상대는 악(惡)’이라며 한쪽을 단죄(斷罪)해버리는 식이라면 여기에 무슨 진실이 있고, 무슨 화해가 가능하겠는가. 이 의장 개인의 입장에서도 한때 몸담았던 정당을 ‘가해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자기부정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집권당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눈과 귀를 열어 수습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신임 이 의장은 그 일에 앞장서야 한다. 야당을 상생(相生)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정치력과 포용력을 발휘하는 것은 기본이다.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고도 국민을 실망시켜 왔다. 이 의장은 왜 국민이 집권당에 등을 돌리고 있는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부터 제대로 읽기 바란다. 다수 국민은 집권당 의장이 취임하자마자 야당을 ‘가해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과거사에 매달리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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