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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8월 6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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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어느 날 영국 런던의 가난한 생선장수 윌리엄 크락포드는 팔지 못한 생선을 담은 자루를 어깨에 메고 길거리에 서 있었다. 그때 마차가 서더니 한 귀부인이 금화와 은화, 동전을 쏟아 부었다. 당시 유행하던 귀족들의 자선행위였다. 그의 발밑으로 굴러온 금화 한 개.
그는 이 돈을 장사 밑천으로 삼지 않았다. 근처 경마장으로 달려가 가장 인기 없는 말에게 금화를 걸었다. 그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박이었다. 얼마 뒤 경마장은 난리가 났다. 그가 손에 쥔 배당금은 인도로 갈 수 있는 선박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거액이었다.
그는 여기서 또 한 번 변신한다. 버클리스퀘어 앞에 있는 대저택을 사서 런던 최초의 카지노를 열었다. 현재 하룻밤에 50만파운드(약 10억원)를 걸어야 게임을 할 수 있는 카지노 크락포드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책은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가 유럽에서 유서 깊은 고급 카지노를 돌며 쓴 기행문이다. ‘소설을 쓰는 갬블러’로 자신을 지칭한 그는 한때 경마에 흠뻑 빠졌던 도박광.
그는 도박교(敎)의 신도가 돼 유럽 카지노의 본산인 모나코의 ‘그랑 카지노’를 시작으로 프랑스의 니스 칸 노르망디, 이탈리아의 산레모, 오스트리아의 바덴과 제펠트, 런던, 독일 비스바덴 바덴바덴의 카지노를 순례했다.
유럽 카지노는 정장을 입어야 입장이 허락된다. 일본의 빠찡꼬장이나 미국 라스베이거스처럼 아무나 즐기는 오락이 아니라 돈과 품위를 함께 가져야 누릴 수 있는 호사취미인 것.
저자는 각 카지노에 전해오는 일화를 풍성하게 전해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독일의 카지노를 전전하다가 비스바덴 카지노에서 알거지가 된 뒤 노름빚을 갚기 위해 소설 ‘노름꾼’을 썼다든가 프랑스 파리 대사 시절 카지노에서 큰돈을 잃었던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재상이 되자마자 카지노를 금지시켰다는 얘기 등.
카지노에서는 나라별 특성이나 민족성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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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을 중요시하는 영국의 카지노는 입장 24시간 전에 회원 신청을 한 뒤 가입이 허락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회원 심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회원제라는 형식을 지키는 것. 독일의 카지노에는 도박하는 사람만큼이나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하루 종일 룰렛에서 나오는 색깔과 숫자를 계산하며 확률을 따진 뒤 확신이 생겼을 때에야 게임을 시작한다. 독일인들은 게임 자체보다 분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저자는 카지노를 단순한 도박장이 아니라 19세기 초 유럽에서 태동한 문화공간이자 어른들의 진정한 놀이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일본 독자들을 향해 ‘노동은 미덕이고 놀이는 죄악’이라는 중세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카지노에서 인생의 행복을 즐기라고 강요하듯 권한다.
책 곳곳에서 일상에서의 탈출, 비일상과 비상식의 세계, 이 세상이 아닌 신비한 곳 운운하며 카지노 예찬론을 펴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 한마디에 집약되는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이여, 열심히 놀아라.”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되는 카지노가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고급스럽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마디를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돈 많은 사람들에 한해.’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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