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비처에 ‘편법 기소권’ 주면 안 된다

  • 입력 2004년 7월 7일 18시 47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에 “기소권은 주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정이 고비처에 파견검사를 두어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정이 대통령의 발언과 다르게 움직이는 모양이 심상치 않다. 대통령직속기구인 부패방지위원회가 먼저 파견검사제를 제의한 걸 보면 노 대통령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하다.

검찰은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검찰조직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판단하고 내부적으로 반발하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대선자금 수사 및 대통령측근 비리로 곤욕을 치른 후에 대검 중앙수사부 축소와 고비처 설치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검찰 힘빼기’라는 시각에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고비처가 기소권을 가져야만 대통령 측근이나 검찰 등 고위 공직자 부패를 수사할 수 있다는 논리도 이해하기 어렵다. 당정은 고비처에 기소권을 주지 않을 경우 검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이유를 댄다. 그러나 검찰과 고비처가 상호 견제하는 가운데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국회 국정감사, 고비처장 인사청문회만으로는 고비처가 대통령의 수족(手足)이 되는 것을 견제하기에 충분치 않다.

이 문제가 정치권력과 수사기관의 힘겨루기 차원에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 친인척이나 새로운 권부가 된 검찰의 비리를 다룰 수사기관의 필요성도 인정해야 한다면 대통령 직속기구가 아니라 재야법조계에서 제의한 대로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상설특검제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 부처간 유기적인 업무협조를 위해 생긴 검사파견제도를 고비처에 기소권을 주는 편법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