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재영/멀리 못보는 부동산대책

  • 입력 2004년 6월 28일 18시 31분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 충분한 물량의 토지와 주택을 공급하지 못하면 주택가격 폭등의 위험이 있다. 지난 몇 년 간의 상황은 전체적으로 주택가격이 오르는 가운데 서울 강남지역 주택가격 상승률이 특별히 높았다. 부자들이 사는 집값이 많이 올랐으므로 소위 상대적 박탈감 말고는 서민들이 피해 볼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어떤 시기에 비해서도 강도 높은 대책들이 많이 나왔다. 지난해 10·29대책으로 정점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에서 진행된 부동산과의 전쟁은 이전에 볼 수 없던 강도 높은 것이었다. 훌륭한 인물이나 국가, 그리고 좋은 정부는 모두 굳은 의지를 갖고 있지만, 그 역의 관계는 꼭 성립하지 않는다. 의지가 굳고 좋다고 사람이나 국가, 정부가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부적절한 수단을 채택할 경우, 굳센 의지는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단기투기억제 급급… 부작용 심각▼

6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부동산 가격 폭등이 있을 때마다 긴급대책들이 나왔다. 일부는 오늘날에도 시행되고 있지만, 크고 작은 부작용을 남기고 폐지된 것들이 더 많다. 이 경험은 많은 교훈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시장을 거스르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교훈이다. 수요가 넘쳐 가격이 오르면 공급을 늘려야지, 수요를 억누르려 하면 부작용만 남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그러나 실제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계획수립, 토지개발, 주택건설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기다려줄 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로서는 당장 무언가 한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장시일을 요하는 주택공급 대책과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단기 투기억제 대책 사이에 조화를 이루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주택문제에 국토 도시 토지 건설 금융 등 많은 사안들이 얽혀 있는 복잡성을 인식하고 단기 투기억제 대책이 주택 공급을 줄이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과거 정부의 일반적인 행태였다. 김영삼 정부가 ‘다주택 누진과세’라는 대선 공약을 포기한 것이 좋은 예다. 그에 비해 노무현 정부는 ‘어떤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올해 주택건설 호수가 계획보다 40%가량 줄 것이라는 최근의 보도는 이제 우리 국민이 그 비용을 치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온갖 규제와 세금 때문에 주택투자의 수익률이 떨어지니 주택이 팔리지 않고, 또 신규 건설이 감소하는 시점에 진입한 것 같다. 주택공급이 줄어드는 것은 몇 년 안에 가격급등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나마 내수의 명맥을 잇던 건설부문마저 쓰러지는 상황은 거시경제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물론 일부 호재를 가진 지역의 주택은 여전히 인기를 끌 것이다. 수도권 신도시와 수도가 옮겨갈 것으로 예고된 충청도 일부 지역의 아파트는 여전히 청약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들 지역에 한정된 투기억제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국지적인 현상일 뿐이다.

▼공급줄어 수년내 가격급등 우려▼

주택공급 감소 현상 등을 고려할 때 지금 전체적으로는 주택투자 수익률을 일반적으로 떨어뜨리는 각종 세금과 규제들을 완화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주택 문제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용감하게 도입한 각종 대책들을 새로 정비해야 한다. 국민생활과 기업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토지와 주택을 무자격자가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개념은 빈껍데기이며 그 실험은 형편없는 실패였다는 경험을 이미 해 놓고도, 주택 공개념과 같은 허황된 제안을 하는 사람들은 정책에서 손을 떼야 한다. 많은 낭비를 무릅쓰고 여러 차례 확인, 재확인하며 얻은 경험들을 잊지 않기만 해도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손재영 건국대 교수·부동산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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