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나선형’

  • 입력 2004년 6월 25일 17시 29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나선형/테리 보스웰·크리스토 채이스던 지음 이수훈 이광근 옮김/395쪽 2만5000원 한울

우리에게 1980년대는 무엇이었을까.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를 돌아 우리가 서 있는 2004년은 어디인가. 새삼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이 책이 80년대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화라는 살벌한 생존경쟁 속에 신음하는 ‘현재’의 절실한 쟁점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일상의 작은 이야기가 강조되는 문화에서 이 책은 그 거창한 제목 때문에 부담스러울지 모르겠다. 더구나 400쪽에 이르는 책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이런 부담감을 예측했던 것일까. 친절한 한국어판 서문은 우리를 둘러싼 현상들에 대해 명쾌한 ‘설명 틀’을 제공한다. 예컨대 13∼14일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에 반대해 벌어졌던 시위의 의미를 선명하게 설명해준다. 반세계화 운동은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이며, 세계체제의 성격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세계체제론자다. 세계체제론은 세계가 국가간 체제와 세계시장이라는 두 가지 구조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불평등한 지구적 분업구조 상의 위치에 따라 국가들은 핵심부, 주변부, 반주변부로 구분된다. 이처럼 ‘기본’에 대한 충실한 설명 덕분에 이 책은 훌륭한 입문서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입문서를 훨씬 넘어선다. 구체적 ‘응용’ 문제에 대해서도 창조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구체적 변화들, 예컨대 1989년의 동구권 몰락, 세계체제를 분석단위로 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관계의 재조명, 자본의 초(超)국적화, 미국 헤게모니 이후의 미래에 대한 역사적 분석 등은 현재 한국의 자본주의 성격과 그 위기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저자들은 1989년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을 자본주의의 승리나 유사사회주의의 해체로 폄훼하려는 양극화된 해석을 넘어서려 한다. 세계를 하나의 분석단위로 상정하고, 세계체제의 변화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나선형적 상호작용으로 해석한다. 또한 대안적 정치기획으로서 세계주의적 사회주의의 효력이 다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전 지구적 수준에서 진행되는 저항운동들의 연대가 지닌 정치적 잠재력에 대한 기대도 놓지 않는다.

이처럼 이 책은 거대한 사회변동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사회변동이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밀접한 것인가를 꼼꼼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정치적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 분야에 천착해 온 저자들의 학문적 열정과 전문가들의 질 높은 번역도 책 읽는 기쁨을 더해준다.

김철규 고려대 교수·사회학 ckki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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