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맞대결 5연승 ‘반상 태풍’ 일으킨 최철한 8단

  • 입력 2004년 5월 2일 17시 30분


한국 바둑계의 새로운 태양으로 주목받는 최철한 8단. 최근 ‘웨이브 파마’를 한 그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바꾸는 게 귀찮아 그냥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월간 바둑
한국 바둑계의 새로운 태양으로 주목받는 최철한 8단. 최근 ‘웨이브 파마’를 한 그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바꾸는 게 귀찮아 그냥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월간 바둑
최철한 8단(19)은 떠오르는 태양이다.

지난해 말 천원전을 우승했을 때만 해도 샛별에 불과했다. 천원전 우승은 박영훈 5단과 송태곤 6단보다 늦었다. 하지만 그 이후 4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이창호 태양’의 빛을 바래게 하며 솟아오르고 있다.

그는 최근 이 9단에게 5연승했다. 국수, 기성 등 두 개의 타이틀을 빼앗았고 국제대회(잉창치배)에서도 이겼다. 이 9단에게 이런 수모를 안겨준 기사는 없었다.

“이 9단은 예상 밖의 수를 자주 두는데 그게 국면을 균형 잡아주는 경우가 많아요. 국면을 보는 눈이 넓은 거죠. 이 9단은 쉽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면 역전되기 쉬워요.”

그는 5연승이 이변의 연속일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그는 기성전 4국과 잉창치배 8강전에서 이 9단에게 완승을 거뒀다. 프로기사들은 그가 역전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점을 평가했다.

“잉창치배는 부담스러웠어요. 이 9단을 8강에서 이긴 뒤 4강에서 질 바엔 차라리 8강에서 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최 8단은 이 9단과 몇 차례 승부를 겨루는 동안 그에 대한 해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9단이 이 장면에서 어떤 선택을 할 지 알겠더라고요. 상대 기풍에 따라 수읽기의 방향이 달라지는데 이 9단의 행동반경을 알게 되니까 수읽기가 쉬워졌어요.”

국내 정상급 기사의 계보로 보면 최 8단은 전례 없는 유형이다.

김인 이창호 9단은 신중하고 두터운 바둑을 구사하는 반면 조훈현 이세돌 9단은 호오(好惡)가 분명하며 실리 바둑과 전투를 즐긴다.

최 8단은 어느 쪽도 아니다. 성격도 맺고 끊지 않고 남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하는 편이다. 여자 친구도 챙기는 게 싫어 사귈 생각도 안한다.

최 8단 같은 성격으로는 성적을 못 낸다는 게 바둑계의 속설이다.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든지 아니면 독사처럼 물고 늘어지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전했더니 그는 “바둑 둘 때는 이를 악물고 둔다”며 빙긋 웃었다.

그는 3월 바둑특기생으로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에 입학했다. 이창호 9단은 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바둑에 방해될까 포기했고, 이세돌 9단은 대학에 왜 가냐고 일축한 적이 있다. 그러나 최 8단은 여유 있으면 다녀보겠다는 편한 마음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후지쓰배 잉창치배 등 해외 대국으로 학교에 거의 못 갔어요. 일본어 개인과외를 1주일에 두세 번 받으며 보충하지만 이번 학기는 포기해야할 것 같아요.”

그는 “아는 것도 없어 사회생활에 뒤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공부에 욕심이 많다”며 “지금은 바둑에 전념할 수밖에 없지만 대학은 꼭 졸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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