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만나는 시]윤재철,“인디오의 감자”

  • 입력 2004년 4월 16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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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오의 감자

- 윤재철

텔레비전을 통해 본 안데스산맥

고산지대 인디오의 생활

스페인 정복자들에 쫓겨

깊은 산꼭대기로 숨어든 잉카의 후예들

주식이라며 자루에서 꺼내 보이는

잘디잔 감자가 형형색색

종자가 십여 종이다

왜 그렇게 뒤섞여 있느냐고 물으니

이놈은 가뭄에 강하고

이놈은 추위에 강하고

이놈은 벌레에 강하고

그래서 아무리 큰 가뭄이 오고

때아니게 추위가 몰아닥쳐도

망치는 법은 없어

먹을 것은 그래도 건질 수 있다니

전제적인 이 문명의 질주가

스스로도 전멸을 입에 올리는 시대

우리가 다시 가야 할 집은 거기 인디오의

잘디잔 것이 형형색색 제각각인

씨감자 속에 있었다

- 시집 ‘세상에 새로온 꽃’(창비) 중에서

용케도 형형색색 인디오의 감자가 남아 있다니 반갑구나. 우리도 있었고말고. 자주감자, 하지감자, 분홍감자, 노랑감자, 주먹감자, 아차 주먹감자는 빼고.

야채가게에 올라오는 것들은 한결같이 허여멀건 미끈미끈, 어린애 머리통만한 게 깎기도 좋고, 먹기도 좋지만 예전의 그녀석들이 아니다. 잘고 단단하고 울통불퉁하던 녀석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가뭄에 강하고, 추위에 강하고, 벌레에 강해도 돈(가격경쟁)에 약해서 사라지는 종자들이 천지란다. 밭두렁마다 수런거리던 조며 콩이며 메밀이며 동부며 팥들조차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농부는 굶어죽어도 씨앗베개를 베고 잔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는가. ‘다들 굶어죽어도 곡물상만 믿고 잔다?’ 겨우내 씨감자 털어먹고, 아른아른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저 빈 들을 어찌 건널꼬?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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