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그는 이미 여자… 행운이 있기를”

  • 입력 2004년 3월 4일 19시 34분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짧은 반바지, 소매없는 배꼽티에 출렁이는 금발….

4일 호주 시드니의 콩코드GC(파72·6253야드)에 나선 미안 배거(38·덴마크)의 모습은 여느 여성골퍼와 다를 바 없었다. 누가 “저 여자, 남자였대”라고 알려주기까지는….

성전환자(트랜스젠더)가 처음으로 프로골프대회에 출전했다. 95년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자가 된 배거가 4일 호주여자오픈에 나선 것. 첫 라운드 기록은 12오버파 84타로 꼴찌(공동 154위). 공동 선두인 로라 데이비스(영국·4언더파 68타)와는 무려 16타 차이다.

이날 주위의 뜨거운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배거는 한 개의 버디도 기록하지 못하고 파 8개, 보기 8개, 더블보기 2개로 무너졌다. 드라이버샷의 페어웨이 안착률은 62%(13개 중 8개)였고 그린적중률은 겨우 39%(18개 중 7개), 평균퍼트 수는 1.78개.

경기를 끝낸 뒤 배거는 “(긴장 때문에)7번 홀까지 어깨 아래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린도 빨라 퍼팅을 조절할 수 없었다. 내 스윙이 어떤 지 알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8세 때부터 골프를 시작한 배거는 79년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주했다. 성전환 수술 3년 뒤인 98년부터 여자선수로 활동한 그는 99년과 2001년 남호주 아마추어여자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주목을 받았다.

프로로 전향한 것은 지난해. 그는 “다른 여자선수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프로로 뛰고 싶은 게 꿈이었다”며 “수술을 받고 호르몬 치료를 하면 몸이 여성화된다. 내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200∼220m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나에겐 남자였다는 이점이 없다”고 밝혔다.

일부 선수들은 배거의 대회 참가를 달갑지 않게 보지만 남자대회에서 성대결을 벌였던 로라 데이비스는 “배거는 이미 여자다.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고 격려했다.

배거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출전도 원하고 있다. 그러나 LPGA와 유럽여자골프(LET)는 출전자격을 ‘여자로 태어난 선수’로 못박고 있어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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