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무해무득(無害無得)

  • 입력 2004년 2월 9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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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업을 하는 손진수씨(48)와 요리연구가 박현신씨(40) 부부는 4년 전부터 경기 용인의 두창저수지 주변에 전원주택을 지어 단둘이 산다. 새벽이면 물안개가 호수 가득 피어오르고 밤이면 풀벌레 우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선율처럼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곳이다. 목공 솜씨가 빼어난 남편은 전원주택업체의 사장 겸 일꾼이고, 아내는 텃밭에서 기른 각종 야채와 신선한 과일로 갖가지 요리를 만들어 식탁을 꾸미고 그 품평을 글로 남긴다.

▷이 집의 가훈은 ‘무해무득(無害無得)’이다. 박씨 부친이 평소 강조해 온 말로 ‘남을 해롭게 해서는 안 되며, 무리해서 득이 되려고 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얼핏 들으면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속 내용은 그렇지 않다. 세상에 남을 해롭게 하는 이들이 많으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남을 위해 애쓴다며 제 앞가림도 못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으니 그렇게 되지도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가훈처럼 이들 부부는 큰 욕심 내지 않고 근면과 성실, 풍성한 식단과 유머로 하루하루를 즐겁고 보람 있게 지낸다.

▷설악산 백담사 회주(會主) 오현 스님은 봉사를 위해 찾아오는 보살들을 잘 내쫓는 분으로 유명하다. 언젠가 한 유한(有閑)부인이 찾아와 “스님들 공양도 지어드리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도 하고 싶다”고 하자 대뜸 “시부모 아침상은 차려 드리고 왔느냐?”고 물었다. 쭈뼛쭈뼛 대답을 못하며 얼굴이 붉어진 보살에게 스님은 “가라. 가서 네 시부모, 남편과 자식 밥이나 제때 챙겨 주거라. 중이란 원래 제 손으로 밥해 먹기 위해 출가한 사람들이니 너는 신경 쓰지 마라”고 일갈하셨다.

▷요즘 우리 사회에 왜 이렇게 남을 위해 산다는 사람과 단체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가까이 있는 가족 친지 친구는 돌보지 않으면서 조국과 민족, 지구와 인류를 위한다며 큰소리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너나 잘해”라고 말해주곤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평범한 이들은 그저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제 앞가림이나 하고, 혹 여력이 있으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가족 친지 이웃을 소리 소문 없이 돌봐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따름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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