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외면일기'…거장 투르니에의 정겨운 일상메모

  • 입력 2004년 2월 6일 18시 00분


코멘트
◇외면일기/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332쪽 1만1000원 현대문학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80)가 ‘내면’이 아닌 ‘외면’을 기록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 날씨, 철 따라 변하는 정원, 만나는 사람들…. 메모를 해 둔 수첩 30여권 가운데 일부를 추려내 책으로 엮었다. 다듬지 않은 원래대로의 단상을 열두 달이라는 상징적인 장(章)으로 나눴기 때문에 독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쪽이나 펼쳐 봐도 상관없다.

이 노년의 작가가 시종일관 경쾌하게 이어가는 문장에는 한낮의 태양과 저녁놀이 모두 담겨 있다.

“귀가 점점 들리지 않는다. 적당한 기계를 맞출 생각으로 보청기상과 만날 약속을 해 놓았다. 그래 놓고는 자꾸만 약속을 연기한다.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남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 게 그리도 중요한 일일까?’”

“우리 마을 정육점 주인 투르니에씨, 나처럼 진짜 당신을 잘 아는 처지라면 당신이 쓴 책 같은 것은 안 읽어도 되는 거죠, 안 그래요?”

볼테르와 발자크, 스탕달 등 대 문호의 책을 읽은 감상도 빠지지 않는다.

“오늘 나는 볼테르의 ‘철학사전’ 한 부를 받았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더할 수 없는 진부함을 한데 모은 초보적이고 싱거운 상식론인 것이다. 나는 이토록 절망적인 책을 읽어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선물로 받은, 왼팔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 요셉의 상이 자신의 소설 ‘마왕’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아기 안기’의 암시가 된다는 창작 후기도 일상의 메모 속에 섞여 있다.

‘요셉이 안고 있는 아기가 그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소설가인 나도 그와 닮은 데가 있다. 내가 마음속에 품어 낳은 아이들의 경우도 늘 이와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