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득헌/스포츠계 '새 룰' 필요하다

  • 입력 2004년 1월 16일 20시 04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김운용(金雲龍)씨의 비리사건을 대하는 심정은 착잡하다. 또 복잡하다. 사실 그를 둘러싼 비리 의혹은 여러 해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수도 여럿이었다. 사정이야 어떠하든 스포츠계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비리와의 단절 계기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스포츠계에는 다행이다.

하지만 파장이 간단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불명예퇴진이나 국제적 망신 여부에 관계없이 그가 한국스포츠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점에 대한 온정론과 함께 ‘포스트 김’을 노리는 움직임도 감지되기 때문이다.

▼체육단체 균형-견제 시스템 갖춰야 ▼

‘한국스포츠의 대부’, ‘세계스포츠의 거물’ 역할을 해 온 그에 대한 사법처리는 당장 몇 가지 현안을 제기한다. 우선은 국내외 스포츠단체에서 그의 공백에 대비하는 일이다. 그는 이미 세계태권도연맹(WTF) 회장과 태권도의 본산인 국기원장직에 사의를 표했지만, IOC 부위원장직이나 국제경기단체총연합회(GAISF) 회장직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두 국제스포츠계에서 중요한 자리다.

또 하나는 그의 노력과 역량이 크게 작용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선정된 태권도에 대한 국제적 시비를 확실히 잠재우는 일이다. 이미 2008년 올림픽 개최국 중국이 우슈를, 일본이 가라테를 올림픽 종목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 등이 만만치 않다. 태권도 시비는 우리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운용씨 사건이 한국 스포츠에 미칠 이해득실만 따지는 일은 구시대적이다. 그것은 변화와 개혁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규칙과 공정을 덕목으로 삼는 스포츠정신의 구현에도 어긋난다. 이번에 진정 생각할 일은 따로 있다. ‘한국 스포츠의 앞날’이다. ‘스포츠계의 새 틀 짜기’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연구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몇 가지를 제의한다.

우선은 스포츠권력의 균형과 견제 구도의 구축이다. 이는 단시일 내에 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김씨 비리의 출발점이 스포츠권력의 독점적 행사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그 권력에 대한 감시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체육단체의 이사회 등이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실제 김씨는 1973년 WTF 회장, 1986년 IOC위원 선임에 이어 1993년 대한체육회장까지 맡아 2002년 체육회장 사임 때까지 민간차원의 한국스포츠 권력을 장악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체육회장 진입을 사실상 봉쇄하는 선거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아무도 그의 권력남용을 견제하지 못했다.

다음은 스포츠외교의 다변화체제 확립이다. 김운용씨 사건의 또 다른 핵심은 그의 스포츠외교 독점에 따른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 뒤에 제기된 그의 책임 문제도 IOC 부위원장이 되겠다는 그의 개인적 욕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임론은 기본적으로 그에 대한 한국 스포츠외교의 의존도가 지나쳤음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 스포츠외교는 민간과 정부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펼쳐져야 한다. 남북스포츠 대화도 마찬가지다. 스포츠에 익숙하지 않은 정부인사보다 스포츠계 인사가 정부대표로 스포츠외교에 참여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국가스포츠위원회 같은 조직의 검토도 필요하다.

▼스포츠외교 이끌 인재육성 시급 ▼

마지막으로 체계적인 스포츠인재 육성방안이다. ‘포스트 김’ 시대를 염두에 둔다면 한국 스포츠외교를 이끌 인사가 많이 눈에 띄지 않아 걱정이다. 사실 국제스포츠계의 영향력은 단시일 내에 생기는 게 아니다. 부단히 행사에 참여해 얼굴을 알리고 교류함으로써 커지는 것인데 그것을 소홀히 했다. 김운용씨 사건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최근 정부와 체육회가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데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것이 되길 기대한다.

윤득헌 관동대 관광스포츠대학장·체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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