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이 천사]<1>'사랑의 편지' 쓰는 장애인 오아볼로씨

  • 입력 2003년 12월 31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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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자택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편지를 쓰는 오아볼로씨. 그는 지난 20년간 무려 50만통의 ‘사랑의 편지’를 소외된 사람들에게 보내는 큰 사랑을 일궈냈다. -김동주기자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자택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편지를 쓰는 오아볼로씨. 그는 지난 20년간 무려 50만통의 ‘사랑의 편지’를 소외된 사람들에게 보내는 큰 사랑을 일궈냈다. -김동주기자
《‘미 리 겁 먹지 마세 요. 내 가 젊 은이 처 럼, 건강 하 다 면…거리 에서 폐 품 이라 도 주울 정 신 력 으로… 살아 가겠 습 니 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있는 한 초라한 다세대주택에서 오아볼로씨(52)가 한 글자 한 글자 힘겹게 컴퓨터 자판을 눌러댔다. 손도 발도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지만 자판을 누르는 그의 손짓에는 어렵고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오씨는 이곳에서 20년째 생면부지의 청년실업자, 탈선 청소년, 각종 범죄자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 보내고 있다. 》

오씨는 어릴 때부터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희귀병에 시달려온 중증장애인. 온몸을 깁스한 상태로 살아야만 했고 학교조차 다닐 수 없었다. 이 병의 후유증으로 그는 지금도 키가 1m를 채 넘지 않는다. 요즘도 힘을 조금만 잘못 주면 뼈가 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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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랜 기간을 비관에 빠져 죽음만을 기다려 왔다. 그러나 30세 되던 1982년 교통사고로 다리를 완전히 쓸 수 없는 한 장애인을 만나면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장애인은 오씨에게 “목발로라도 걸을 수 있는 당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살아가라”고 일갈했다.

그때부터 오씨는 볼펜을 들고 ‘용기를 내라. 나 같은 사람도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는 내용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성경에 나오는 복음전도사인 ‘아볼로’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 편지는 ‘사랑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1997년 10월 그에게 또 다른 불행이 찾아왔다. 교회 신도들에게 강연을 하고 휠체어를 타고 나오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 6개월을 병원에서 보내면서 편지쓰기도 중단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목발은 고사하고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의 전부였다.

게다가 외환위기의 여파로까지 겹치면서 후원의 손길도 끊기기 시작했다. 매달 200만원 정도이던 사랑의 편지 후원금 및 우표 지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편지 쓰는 일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이 서른에 들은 장애인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렸다. ‘그래, 몸은 더 망가졌어도 마음만은 여전히 행복한 사람이다.’그는 퇴원 후 이를 악물고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고로 어깨에 피가 돌지 않아 볼펜 대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편지가 이제 50만통을 훌쩍 넘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아내 윤선자씨(38)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다. 오씨에게 우표를 지원해주는 사랑의 편지 회원으로 인연을 맺었다가 1988년 결혼한 윤씨도 다리 뼈가 휘어지는 구루병으로 3년 전 수술을 받고 다리를 전다.

오씨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질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며 “나는 가진 것은 없지만 근심이 없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오씨의 편지를 받고 새 삶을 찾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정현기씨(34)는 경북의 한 산골마을에 사는 뇌성마비 장애인.

한 번도 제 힘으로 걸어본 적이 없어 어릴 때부터 항상 실의에 빠져 있었으나 1993년 주위의 소개로 오씨의 편지를 받은 뒤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다. 인생이 바뀌었다.

오씨와 꾸준히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던 정씨는 2001년 소아마비를 앓고 있던 또 다른 장애인을 만나 결혼해 2002년 아들까지 낳았다.

정씨는 항상 오씨에게 “당신을 못 만났다면 내 인생을 접었을 것이다. 이제 대학을 가서 못해 본 공부도 하고 싶다”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오씨는 최근 들어 편지 수를 많이 줄였다. 줄어든 후원금 탓에 우표 값을 대기 어려워서다. 한때 매일 100여통씩 쓰던 편지는 최근 50통으로 줄어들었다.

주변에서는 돈이 안 드는 e메일을 사용해 보라고 권하지만 그는 “e메일은 도저히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여전히 편지를 고집하고 있다.

“빚 때문에 자식을 한강에 던져버리는 비정한 세상이 됐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은 내가 책임져야 하듯이 제 편지로 희망을 찾은 사람들을 제가 끝까지 보듬어줘야죠.”부산에 사는 박모씨(24·여)도 간질병으로 실의의 나날을 보냈으나 7년 넘게 오씨의 격려를 받으면서 수차례의 자살 위기를 넘기고 지난해부터 사회복지관에서 오히려 다른 장애인들을 돕고 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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