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불신의 코트’ 곪은 상처 터졌다

  • 입력 2003년 12월 21일 23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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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올 게 오고야 말았다.

KBL 김영기 총재의 사퇴까지 부른 프로농구 SBS의 몰수게임패는 어쩌면 예고된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농구코트에서 판정 시비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올 시즌 들어 심판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시즌 개막일에 프로농구 사상 처음으로 최희암 전 모비스 감독이 퇴장당한 대목부터가 불길한 전조였다. 누가 봐도 뻔한 바이얼레이션이나 파울도 놓칠 만큼 수준 이하에다 일관성 없는 판정이 잦아지면서 심판에 대한 불신은 깊어만 갔다.

반면 심판들은 테크니컬파울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심판 판정에 이의가 있어 KBL에 설명회를 요청하면 오히려 괘씸죄에 걸려 불이익을 받는다. 심지어 KBL 고위층에 특정 팀을 챙기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돈다.

심판에 대한 감독의 대응도 부적절했다. 최근 은퇴한 선수 출신의 심판이라도 배정되면 옛날 제자나 후배 다루듯 폭언을 일삼았다. 늘 자신들만 당한다는 듯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경기 내내 심판과 신경전을 벌이다 승부를 그르치는 일도 많았다. 목소리를 높이고 삿대질이라도 해야 유리한 판정을 받아 경기 분위기를 되돌릴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도 팽배해 있던 게 사실. 이번에 문제된 SBS 정덕화 감독 역시 “(심판이) 우리를 깔본다. 저번에 KCC와 할 때도 그러더니 무슨 수를 써도 못 이길 상황이었다”며 불신감을 드러냈다.

시즌이 중반에 접어들어 각 팀의 순위 경쟁이 치열해지고 한 경기 한 경기에 목숨을 걸면서 감독과 심판의 신경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렇다고 경기를 포기한 SBS는 자기 가게를 때려 부순 상인과 다를 게 없다. 프로농구가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것을 망각한 처사다. “더 이상 못해먹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간 김영기 총재와 KBL 이사진의 처신도 경솔해 보인다.

곪은 상처야 아물면 그만이지만 갈 길 먼 프로농구는 책임론만 무성한 채 정작 갈등을 해소할 치유법이 없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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