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먹이사슬'

입력 2003-12-11 18:29수정 2009-10-1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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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소기업 사장이 해당 지역구 의원을 접대할 일이 있어 주말에 골프장을 예약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친구인 고위직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좀 해 줄 수가 없느냐”고 지원을 요청했다.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판사는 결국 친한 기자에게 부탁했고, 기자는 평소 돈독한 관계인 지역구 의원에게 부탁해 부킹을 해결했다. 나중에 보니 중소기업 사장의 접대 상대는 바로 그 지역구 의원이었다. 우리 사회 ‘먹이사슬’의 생생한 사례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관련 업계 사람들은 대충 아는 이야기다. 경찰 검찰 세무서 직원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누가 밥값을 냈을까? 답은 “식당 주인”이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2시간 거리인 신안의 외딴 섬 대기점도(大奇點島)에서 벌어지고 있는 쥐-고양이-개 사이의 먹이사슬에 얽힌 얘기다. 농사와 고기잡이를 주업으로 23가구 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 섬에서 쥐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늘어나자 주민들은 1970년대 초 육지에서 고양이를 들여왔다. 이후 쥐들은 크게 줄었으나 집고양이와 집을 나가 야생이 된 고양이를 합쳐 400여 마리로 늘어나면서 고양이들에 의한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조 중인 생선과 양식장 새우를 잡아먹고 잔치에 쓰기 위해 보관해 놓은 제수용 고기를 냉장고에서 훔쳐 먹는 사례까지 생겼다.

▷30년 동안 고양이를 상전처럼 섬겨온 주민들은 수개월 전 고양이 보호를 위해 섬에서 퇴출시켰던 개들을 육지에서 반입하기로 어렵사리 합의했다. 묶어서 키우되 고양이에게 해를 끼치면 즉시 섬에서 쫓아낸다는 조건으로 개 사육을 잠정 허가한 것이다. 그 후 6마리의 개가 섬에 들어왔고, 고양이와 개의 ‘불안한 동거’가 수개월째 진행 중이다. 고양이 때문에 섬 밖으로 쫓겨났던 개가 고양이를 견제하기 위해 섬으로 복귀한 셈이다. 이 또한 기묘한 개 팔자, 고양이 팔자가 아니랴.

▷어디 개와 고양이뿐이겠는가. 사람 사는 사회는 언제 어디서나 이처럼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의 관계로 이어져 왔다. 퇴직 공직자들이 소속 부처의 산하 단체나 관련기관 및 업체 임직원으로 재취업하는 낙하산인사 관행, 전관예우와 금품 향응 수사로 이어지는 판사-검사-변호사의 한통속주의, 골프장 만드는 데 도장을 780개나 받아야 하는 행정체계 등이 그것이다. 대선기간 중 ‘정중한 협조 요청’으로 재계를 압박한 정치권과, ‘차떼기’와 ‘채권 책’ 등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천문학적인 돈을 갖다 바친 재벌기업의 관계는 가장 추악한 먹이사슬의 표본일 터이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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