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정진규, '몸時·24 -고향에 가서'

  • 입력 2003년 11월 26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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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간 초록시금치 밑둥

아침 산책 나온

바알간 오리밭 맨발

채마밭을 지나

바알간 볼의 소년이

새 운동화를 신고

邑內

학교로 간다

도시락이 따뜻하다

아직은

미워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아직은

바알간 속살로

기다리고 있는 게 더 많다

-시집 '몸時'(세계사)중에서

소나무, 잣나무야 나이테 꽤나 두른 선비들 아닌가. 서릿발, 눈발이고 천 년째 푸른 거야 새로울 것 없지만 저 야들야들한 것들 좀 보게. 발목 채이는 눈시루떡 살짝 헤치면 푸르게 기지개 켜는 초록 시금치들. 새파란 두 주먹, 붉은 맨발로 삼동(三冬)을 건너는 저것들은 겨우 두어 달 된 아기들이라네.

바알간 오리발? 고인돌, 선돌 다 얼어 죽는 추위래도 저것들은 겨우내 쩍쩍 달라붙는 얼음판 위를 맨발로 걷는다네. 하아, 입김으로 새벽길 녹이며 학교 가는 볼 붉은 소년이 있구나. 시절이 아무리 엄동이어도 얼지 않는 바알간 속살이 있어서, 무서운 겨울도 언제나 나그네에 불과하다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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