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이나연/누굴위한 ‘무인공과금 시스템’인가

입력 2003-11-02 17:56수정 2009-10-1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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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파트 관리비를 내기 위해 점심을 대충 때우고 A은행을 찾았습니다.

15분쯤 기다린 뒤 제 순서에 영수증을 내밀자 직원은 “아파트 관리비는 받지만 나머지는 A은행에 계좌가 있어야만 받는다”고 하더군요.

어렵게 온 만큼 공과금도 내야겠다는 생각에서 새로 계좌를 만들었습니다. 직원은 “계좌 유지 수수료가 있다”며 “월 평균 잔고가 10만원이 안 될 경우 수수료를 잊지 말고 입금시키라”고 말했습니다.

아파트 관리비만을 낸 뒤 계좌를 해지하고 제가 거래하는 B은행으로 갔습니다. 이곳 역시 공과금은 기계로만 낼 수 있었고 창구에서는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계로 공과금을 낸 뒤에는 영수증을 받기 위해 다음날 다시 은행에 가야합니다. B은행에서는 “계좌에 입금 사실이 찍히기 때문에 영수증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통장에 찍히는 것도 당일에는 되지 않기 때문에 다음날 다시 은행에 가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 많은 공과금 가운데 어떤 것을 냈는지 기억하기 쉽지 않습니다.

‘무인 공과금 납부 시스템’은 국내의 한 ‘리딩 뱅크’가 수익보다 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얼마 전 도입한 뒤 곧 전 은행에 파급됐습니다.

은행에서는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훨씬 편리한 제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은행이 번거로운 일을 고객에게 떠넘긴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 정말로 고객의 편리를 생각했다면 고객들에게 선택권(기다리기 싫은 사람은 기계를 사용하고, 창구를 이용하고 싶은 사람은 기다리도록)을 줄 수도 있지요.

공과금 수납이 은행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지도 다시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씨티은행은 몇 년 전까지 비용절감 차원에서 기계화했지만 최근 ‘어떻게 해야 고객이 자주 지점에 올까’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은행에 와야 새로운 상품을 알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저도 잘 가지 않던 A은행에서 흥미로운 상품의 포스터를 보고 가입을 고민했습니다. 만일 공과금을 쉽게 냈더라면 A은행의 새로운 고객이 됐을 것입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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