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건/한나라의 ‘조변석개’ 검찰論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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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SK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앙수사부가 도마에 올랐다.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는 “어제 검찰 고위 간부가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외국에 나가서 빌딩을 산 정치인도 있다’는 얘기를 했다”며 “수사로 말해야 할 검찰이 왜 그런 얘기를 퍼뜨리느냐”고 비판했다.

안대희(安大熙) 대검 중수부장이 16일 기자들을 만나 정치권의 SK 비자금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 추진 움직임을 거론하면서 정치권의 부정축재 관행을 지적한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장인 심규철(沈揆喆) 의원도 “검찰의 조사 행태가 통합신당 이상수(李相洙) 의원 등에 대한 수사와 비교해 현저히 균형을 잃었다”며 “검찰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마구 흘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검찰이 15일 SK에서 100억원을 받은 혐의로 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을 소환조사한 직후 최 의원의 자택 압수수색과 비서 및 운전사에 대한 조사가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것이 다른 당에 대한 수사와 비교해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항변이다.

이날 한나라당 회의에서 나온 비판과 지적은 타당한 측면도 있다. 민감한 정치권 비자금 수사를 지휘 중인 검찰 간부가 기소 등 법으로 정해진 절차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수사 내용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안 중수부장의 발언이 사려 깊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수사의 방향에 따라 검찰을 치켜세우거나 깎아내리며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한나라당의 태도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8일 한나라당 국감대책회의에서 “지금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 실세는 안대희 중수부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검 중수부가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SK에서 11억원을 받은 혐의를 확인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또 최 대표와 홍 총무 등 당 지도부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검찰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최 전 비서관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검찰을 신뢰한다”며 수사를 독려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소속 의원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자 검찰에 대한 태도가 180도 바뀐 것이다.

검찰 수사의 독립은 청와대와 여당이 간섭할 때만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 국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거대 야당도 검찰엔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은 17일 “최돈웅 의원 소환조사 거부를 검토했으나 ‘정치의 저울’에서 약속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다. ‘소환에 충실히 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방침을 바꿨다”고 밝혔다.

이런 원칙이 정략적인 이유로 바뀌지 않기를 한나라당 지도부에 기대한다.

이명건 정치부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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