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떠도는 그림자들'…경험-역사 조각들이 숲을 이뤄

  • 입력 2003년 10월 3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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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그림자들/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252쪽 8000원 문학과지성사

지난해 10월 ‘떠도는 그림자들(원제 Les Ombres errantes)’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파스칼 키냐르(55)는 이렇게 말했다.

“기사(騎士)가 말을 타고서 숲을 질러가듯, 나는 연필을 들고 사상의 숲을 지나가면서, 그 기록을 남긴다. 내 책은 소설과 이야기, 풍경, 자전적 단편들의 출발들을 이어놓은 것으로,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다.”

모두 55장(章)으로 이뤄진 ‘…그림자들’에는 하나로 이어지는 줄거리가 없다. 시간과 존재의 기원을 탐구하면서 자폐증을 앓았던 자신의 경험, 자유롭게 글을 쓰기 위해 어느 고원지대에 숨었던 프랑스의 신학자,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 잉글랜드와 프랑스간의 백년전쟁 등 개인의 생각과 역사적 현실의 조각들이 혼재한다.

‘권력은 경멸의 대상이고, 제도는 불명예이고, 신앙은 비겁함이며, 결속은 수치이고, 불복종은 미적이며, 옛날이 야생성과 긍지일 수가 있다’라든가 ‘사라진 것에 끝없이 불을 붙이기, 바로 그것이 엄밀히 말해 독서이다’ 식의 아포리즘들이 가득하다.

작가 스스로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잡다한 사실들, 전혀 다른 시간들, 매우 신기한 이야기들을 모아 하나의 흐름으로 융합시키는 중요한 시도”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발표됐을 때 전통적인 소설작법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일부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으나, 탁월한 묘사와 깊이 있는 사유로 공쿠르상 수상작이 됐다.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이 작품에 대해 “작가 특유의 글쓰기 방식인 ‘비(非)장르’를 확립하고, 그 창문을 하나씩 열어 우리에게 빅뱅 이전의 혼돈(카오스)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문학비평가 프랑수아 누리시에는, 키냐르의 책을 읽고 영문을 알지 못해 난감해 할 독자에게 ‘그저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되는 대로 그 안에서 한가롭게 거닐어보라’고 권한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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