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칸쿤협상 결렬 이후가 더 어렵다

  • 입력 2003년 9월 15일 18시 25분


코멘트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결렬로 막을 내렸다. 현지에서 반대시위를 하던 우리 농민단체 등은 환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협상 결렬에 축배를 들 상황이 아니다.

특히 쌀에 관한 한 협상의 부담이 더 커졌다. 우리는 내년에 농업소득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쌀의 시장개방을 놓고 미국 중국 호주 등 수출국들과 재협상을 해야 할 처지다. WTO 도하개발어젠다(DDA)협상은 적으나마 일본 등 우군(友軍)이 있어 양자간 쌀 재협상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강대국들을 상대로 혼자 싸워 버텨내기는 훨씬 어렵다.

쌀 재협상 이전에 DDA 농업분야 세부협상원칙이 타결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칸쿤에서 확인된 역학관계로 볼 때 초안보다 우리 쪽에 더 불리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 등 10개 농산물수입국 그룹은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과 22개 수출국 그룹에 밀려 협상력과 수에서 크게 열세를 보였다. 정부는 어떻게든 DDA협상에서 쌀 시장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쓸 수 있는 외교력을 총동원해 열세를 만회해야 한다. 다른 수입국들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개별접촉을 통해 미국과 EU 등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협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농업의 획기적인 구조조정이다. 칸쿤협상 결렬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지 않아도 된다는 환상을 농민들에게 심어 주거나 구조조정을 늦추어서는 결코 안 된다. WTO체제가 존속하는 한 DDA협상은 계속되고 언젠가 타결된다. 농촌과 농업의 구조를 바꾸고 경쟁력을 높이지 않은 채 시간을 끌수록 개방의 충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WTO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나 ‘한국은 반(反)WTO 국가’라는 국제사회의 인식이 확산되게 내버려둬서도 안 된다. 무역의존도가 70%에 이르는 우리에게 WTO가 주도하는 자유무역질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