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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20일 1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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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바그너 음악에 열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히틀러 전기에는 열두 살 때 바그너의 작품 ‘로엔그린’을 처음 접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히틀러는 전쟁의 와중에도 바그너 음악을 연주하는 바이로이트 축제에 참석했다. 무엇이 히틀러를 그토록 바그너 음악에 심취하도록 만들었을까. 바그너는 오페라를 현대 종합예술의 시초라고 할 악극(樂劇) 형식으로 한 차원 끌어올린 ‘거인’으로 추앙받지만 사상면에서는 반(反)유대사상에 투철한 독일민족 우월론자였다. 바로 그런 점이 유대인을 600만명이나 학살한 히틀러의 정신세계에 자양분이 됐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바그너는 음악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그의 음악을 숭배하는 이가 많은 만큼 금기시하는 사람 또한 많다. 인간적으로 볼 때 바그너는 고집불통의 이기주의자에다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줄행랑치는 파렴치한이었으며, 동료의 아내까지 가로챈 ‘부도덕의 화신’이었다. 거기에 나치 제국의 ‘대표 음악가’로 떠받들려졌으니 그의 음악을 외면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히틀러가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한 게 그의 잘못은 아니다. “바그너가 저지른 모든 비양심적인 행동은 그의 작품을 위해 저질러졌다는 사실로 용서될 수 있다”고 한 음악학자 앨프리드 아인슈타인(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사촌동생)의 말처럼, 인간과 그의 예술을 구별해 볼 필요도 있다.
▷엊그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독일 정계의 오랜 금기를 깨고 127년 전통의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 참석했다. 이로써 반유대주의의 상징으로 낙인찍혔던 바그너 음악에 일종의 ‘해금’이 이뤄진 셈이다. 이보다 앞서 재작년 7월에는 유대인 출신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전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에서 바그너 음악을 연주했다. 사람들은 이제 바그너 음악을 음악 자체로 감상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워진 것일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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