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누구를 위한 ‘차별적 홍보案’인가

  • 입력 2003년 8월 12일 18시 12분


재정경제부는 11일 본보가 단독 보도한 ‘정책 찬성-반대자 분류…정부, 차별적 홍보 추진’ 제하(題下)의 기사에 대해 해명 보도 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서 재경부는 “새 홍보 전략이 국민의 이해와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일 뿐 정부 입맛에 맞춰 국민 성향을 분류하거나 편을 가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농민에게는 농업 관련 자료를, 근로자에게는 노사정책 방향을 소개하는 식으로 단지 직업을 기준으로 한 홍보자료 전달 수단을 강구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추진 중인 차별적 홍보는 민간 기업들이 도입한 고객관계관리(CRM) 기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소비자의 특성과 요구를 미리 파악해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리체계다. 재경부의 해명을 액면대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기자는 기립박수라도 보낼 생각이 있다. 관료조직에 민간 기업의 첨단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개혁과 혁신을 위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재경부는 4일 각 부처에 보낸 공문에서 홍보대상을 ‘적극적 반대자’ ‘소극적 반대자’ ‘정책편익수혜자’ 등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이렇게 한 이유와 근거에 대해서는 11일에도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또 ‘특정 고객별로 차별화된 홍보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한 세부 방침에 대해서도 딱 부러진 해명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예를 들다 보니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 실제 의도와는 다르다’라며 대충 넘기려는 분위기였다.

그렇다면 당장 ‘차별적 홍보’를 해야 하는 각 부처의 반응을 보자.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재경부가 CRM 기법을 도입한 홍보 계획을 짜라고 요구했지만 정책 반대자와 찬성자를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워 난감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경제부처 관계자도 “바뀐 홍보 지침을 전달받았지만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종합해 보면 재경부는 분명 ‘성향 분류’를 요구했고 구체적인 방침까지 수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쉬쉬한 내용이 언론에 공개된 뒤 나온 해명자료만 놓고 보면 사안의 진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차별적 해명자료’가 제공된 셈이다.

만약 정부가 추진하려는 차별적 홍보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곤란하다. 국민이 직접 이곳저곳을 ‘취재’해 정부의 의도를 헤아리는 사실상 ‘불가능한 작업’을 하지 않는 한 정책의 한쪽 면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에 대해 일방적으로 설득하는 데만 치중하면 막상 국민은 정책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고기정 경제부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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