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4월 술자리’ 알고도 숨겼다니

  • 입력 2003년 8월 7일 18시 25분


양길승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이 ‘6월 술자리’ 두 달 전인 4월에도 나이트클럽 사장, 민주당 전 충북도 부지부장 등과 술자리를 가진 사실은 이 사건의 성격 자체를 완전히 달라지게 하는 중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구면인 만큼 탈세수사를 무마해 달라는 그들의 청탁이 더 은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화베개를 비롯한 45만원 상당의 선물 말고도 다른 거래가 있었거나 양 전 실장이 실제로 경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을 가능성에 대해 보다 면밀히 조사를 했어야 했다. 또한 그들이 술자리 외에도 직간접적인 연락이나 관계를 갖지 않았는지도 추적해 봤어야 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자체 조사에서 ‘4월 술자리’ 접촉을 확인하고도 공개조차 하지 않아 새로운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시는 경찰이 나이트클럽 사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발표에서 제외했다는 청와대의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이 사건의 출발점은 청와대 직원이 도에 넘치는 향응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4월 술자리’가 정말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면 청와대의 판단 기능에 문제가 있다. 반대로 그 의미를 의도적으로 간과했다면 양 전 실장의 사표 수리로 파문을 적당히 봉합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어떤 경우든 청탁은 있었으나 영향력 행사는 없었고 선물 이외의 금품 수수는 없었다는 청와대의 조사 결론은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거짓말한 것이 드러난 양 전 실장과 관련자들의 진술에 의존한 조사는 본래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1차 부실조사에 이어 2차 발표 누락으로 의혹을 확산시킨 청와대가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민주당 내에서까지 청와대의 자체 감찰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민정수석비서관실의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 않은가.

이 사건은 검찰이 원점에서 재수사를 해야 한다. 아울러 청와대 개편 때 민정수석비서관실을 대폭 정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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