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68…아메 아메 후레 후레(44)

  • 입력 2003년 7월 15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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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피가 흐르지 않는 다른 민족에게 일본의 정신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게 또 굉장히 어려운 문제예요. 반도에서는 일시동인(一視同仁), 내선일체의 통합이념을 침투시켜 이상을 실현시키는 데 33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대륙은 넓기도 하고 인구도 많잖습니까. 조선사람들에게는 기꺼이 모국인의 소작인이 되는 미풍은 있지만 자부심은 별로 없어서 저항을 하지 않는데, 대륙은 노동자나 부녀자들조차 반항적이랄까, 적의에 찬 눈길로 쳐다봅니다. 아니, 표면적으로는 나뭇가지에서 쉬고 있는 매미처럼 무관심을 가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먹고 자는 것도 마다하고 뼛골이 빠지도록 철도와 도로를 만들고 다리를 놓고, 농지를 개척해서 그 땅에 맞는 작물을 연구하고 개량하면서 말이죠, 거지나 다름없는 노동자들에게 일거리를 주는데도 놈들은 절대 고마워하지 않고, 우리를 믿지도 않아요.

결국 국어입니다, 국어밖에 없어요. 국어로 말해야 비로소 일본적 정신을 육성할 수 있고, 국어란 토양에서만 애국을 계몽할 수 있는 겁니다. 조선사람도 1911년에 조선교육령을 시행하면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1940년에는 창씨개명을 실시하면서 달라졌지 않았습니까? 그런 정책을 대륙에서도 실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육자이면서 통치자의 일원이 돼야 하는 거죠. 진정한 의미의 왕도낙토, 오족협화가 실현되려면 오륙십년…아니 한 백년은 걸릴 겁니다…”

교사는 마치 말을 시식하듯 입을 움직이고는 바짝 타들어간 담배를 내던졌다. 사냥모 쓴 남자가 담배를 내밀자 슬쩍 고개 숙이며 받아들고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고 소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만주 국기 본 적 있느냐?”

“…아니요.”

“위에서부터 빨강, 파랑, 하양, 검정, 그 색들을 황금색이 둘러싸고 있다. 빨강은 남방, 파랑은 동방, 하양은 서방, 검정은 북방, 황금색은 중앙을 뜻하고, 중앙이 사방을 통어한다는 뜻도 담겨 있고, 어떤 민족이든 만주에 영주하는 자는 평등하게 대우한다는 오족협화의 정신도 담겨 있다. 오족은 뭔지 아느냐?”

“일본민족, 만주민족, 한민족, 몽골민족, 조선민족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국도는 신경, 황제는 강덕제(康德帝)란 것도 기억해 두도록.”

교사가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미도리를 손가락에 끼고 무슨 말을 할까 궁리하는 동안에도 열차는 봉천을 향해 쉼없이 달렸다. 휘어진 선로에서 차체가 흔들리고, 집들이 언뜻언뜻 보이더니, 기적이 다섯 번 울리면서 속도가 뚝 떨어졌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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