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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6월 20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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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몬스대 명예교수인 저자(73)의 철학적 사유를 담은 산문집이다. 그는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강의하다가 조국을 떠나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 등지에서 30여년간 연구와 강의를 했고, 그 후 다시 귀국해 포항공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임했다.
“인간을 자연과 우주로, 나를 남과 사회로 열어주는 길들은, 자연과 우주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여 뜻있는 것으로, 나와 남 사이에 사회의 질서를 세워 진정한 의미의 인간적 세계를 창조한다.”
그를 멀고 먼 길로 내몰았던 지적 열정은 그를 넓고 넓은 진리와 삶의 세계로 안내했고 그와 세계 사이를 연결하며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와 같은 길은 벨트(Welt), 즉 물리현상으로서의 세계가 움벨트(Umwelt), 즉 환경으로서의 세계로, 환경으로서의 세계가 레벤스벨트(Lewenswelt) 즉 생활세계로, 무의미의 세계가 의미의 세계로 발전하는 역사의 형이상학적 기록이다.”
이 산문집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학생들에게 널리 읽히기도 했던 ‘길’, ‘나의 길, 나의 삶’을 비롯해 그의 오랜 사색을 담은 글들이 모여 있다. 평생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삶과 세계를 따뜻한 가슴으로 지켜보며 펼쳤던 그 사유의 편린들을 볼 수 있다. 길, 자국, 고독, 밤, 담, 인연, 연륜, 약자, 인정, 팔자, 죽음, 땅, 시골…. 그는 우리 주위에 있는 유무형의 대상들을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바다의 어느 위도와 경도상에 있는지도 모르며,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해서 이렇게 바다 한복판 어두운 파도에 흔들리며 떠 있는지 모를지라도, 배에서 내려 그것을 알아볼 수는 없는 것이다. … 싫든 좋든, 그 이유가 어쨌든 나는 배를 떠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내가 탄 배를 밝히고 있는 선창 안의 등불이 아무리 빈약하더라도, 나의 선로를 밝힐 수 있는 빛은 오직 그 등불뿐이 아니랴.”
퇴임 후에도 그는 아직도 작은 성찰의 등불을 든 채 이 ‘배’에서 내릴 줄 모른다. 요즘도 그는 자택에서 조용히 집필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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