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상생정치, 청와대가 버렸다

  • 입력 2003년 4월 25일 18시 31분


노무현 대통령이 여야합의의 ‘부적절’ 의견을 무시하고 고영구씨를 국가정보원장에 임명한 것은 실망스럽다. 노 대통령은 어제 고씨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국회가 검증을 하면 그만이지 국정원장을 임명하라 말라 하는 것은 대통령 권한에 대한 월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견 표시는 좋지만 국회운영을 한다 안한다, 추경도 안한다는 것은 잘못이다”는 말도 했는데 이쯤 되면 대통령과 국회가 정말 서로 ‘막가자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통령의 국정원장 임명권이 국회의 인사청문회 결과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의 뜻을 무시한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는 국민의 대표기관에서 먼저 권력기관장의 적격성을 검증하자는 인사청문회의 근본취지를 훼손할 뿐 아니라 더 크게는 대의민주주의의 정신을 위협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에 대해서도 “어느 시대인데 국정원이 정권 시녀 역할을 할 때 행세하던 사람이 나와 (고 원장에게) 색깔을 씌우려 하느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 또한 국회의 합의된 의견에 일방적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자칫 의회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다.

국회 의사를 존중하겠다던 노 대통령의 인식이 이렇듯 돌변해서야 상생(相生)정치는 더 이상 발붙이기 어렵다. 당장 한나라당은 “당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야당이 이번 문제를 민생에 직결되는 추경편성안 및 법안 심의에 연계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정국경색에서 빚어지는 모든 피해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할 때 그 근원적 책임은 집권측이 져야 할 것이다.

국정원 개혁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상생정치로 민생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특정인사만이 국정원 개혁의 적임자라고 고집하는 것도 공감하기 어렵다. 청와대는 상생정치를 버렸다. 잘못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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