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패 막자더니 조사결과 숨기나

  • 입력 2003년 4월 8일 19시 00분


부패방지위원회가 71개 공공기관의 민원인 3만여명을 대상으로 기관별 청렴도를 조사하고서도 기관별 지수와 순위를 숨김으로써 몸을 사린 모습을 보였다. 부방위가 조사대상 기관을 어정쩡하게 상중하 세 그룹으로 나누어 발표한 것은 부패 정도가 심하게 나타난 기관의 반발을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돼 부방위의 존립 목적을 의심케 한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부패지수가 높은 국가의 반발을 무릅쓰고 국가별 순위와 지수를 정확하게 발표하면서 권위가 붙어 세계 102개 국가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TI의 부패지수는 외국에 거주하는 주재원들의 인식을 조사하는 방식이지만 부방위의 조사는 실제 민원 서비스를 경험한 사람들의 금품향응 제공 빈도 등을 물었다. 부방위 조사의 평균 기관별 표본수도 432명이나 돼 결코 TI의 조사보다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방위가 몸조심을 한 것은 청렴도 하위 그룹이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이어서 그런 것인가. 모든 통계조사에는 오차가 있는 법이지만 부방위는 조사자료 방식 결과를 모두 공개함으로써 여론의 검증과 질정을 구했어야 한다.

부방위는 대상 기관장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설득력이 없다. 부방위 조사는 2002년도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임명된 기관장과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결과를 정확히 발표함으로써 해당 기관들이 분발하도록 자극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검찰 경찰 분야는 금품향응 제공 경험이 많고 관행적인 것으로 드러났고 세무 분야는 업무담당자의 금품향응 수수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부방위 조사는 금품 제공 여부만 물었을 뿐이지만 제공하는 금품의 다과에 대해서도 조사했더라면 충격이 더 클 뻔했다.

이남주 신임 부패방지위원장은 시민단체 출신답게 부패척결 의지를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지금이라도 기관별 청렴도 순위와 지수를 정확하게 발표하는 것이 그 길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