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성린/'진보적 개혁' 속도 조절해야

  • 입력 2003년 3월 3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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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경제의 불안 요인은 이라크전쟁, 북한 핵문제와 더불어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가운데 새 정부 경제정책의 불확실성 요인이 27일 정부의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확정된 ‘새 정부 경제운용방향’으로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다.

그러나 이 경제운용방향은 당면한 경제위기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현실성 있는 단기적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새 정부의 개혁 방향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기에는 미흡한 것 같다.

▼규제완화로 경제살리기 먼저 ▼

새 정부 경제운용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최근 악화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안정을 위한 경제활성화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시장의 불안 요인을 해소하기 위한 새 정부 개혁정책의 구체적 방안과 일정 제시이다. 전자는 새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고, 후자는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 제고와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다.

먼저 전자의 경제활성화 정책과 관련해, 새 정부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금리인하나 재정확대와 같은 단기적 경기부양책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보다 근본적 대책으로 다양한 규제완화 방침을 내놓은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 규제완화는 그동안 기업들의 신규투자를 가로막아 온 수도권 정비계획과 환경, 토지 관련 규제들을 풀어줌으로써 우리 경제를 근본적으로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에 국가균형발전 등의 이유로 완화 대상에서 제외된 규제들도 차제에 과감히 풀어 줄 필요가 있다. 장기주택대출제도의 도입 또한 부동산시장 활성화와 국민의 주택마련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기에 부작용 예방책과 더불어 조속히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책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진 않았지만 북핵 문제와 이라크전쟁 파병과 관련해 미국과의 불필요한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공조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정부의 정책 변화도 새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한 국내외의 의구심을 완화시켜 국내외 투자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다음으로 개혁정책과 관련해, 새 정부는 최근 경제상황을 고려해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했고, 이번 경제운용방향에서도 새 정부 출범 당시의 불필요하게 공격적이고 섣부른 개혁논리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현실감을 찾은 것 같다. 그리고 재벌개혁 이외의 다른 개혁과제들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마치 재벌개혁만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던 초기의 불균형에서 벗어나 다행스럽다. 그러나 새 정부가 제시한 개혁추진 일정이 모호한 데다 그 내용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과 소위 진보성향을 반영하는 것들이 혼재되어 있어 기업과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 기능을 활성화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개혁은 조속히 추진해야 하고, 진보적 개혁은 경제상황을 보아가면서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증권분야 집단소송제, 부당내부거래 조사, 지주회사제도 도입과 같이 기업투명성을 제고하는 대책들은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조치와 더불어 조속히 도입하고 동시에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포함한 기업규제를 과감히 완화해 주는 것이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 금융기관 민영화, 투신사 구조조정, 노사관계 관련법과 제도의 정비, 철도·에너지공기업 민영화 추진 계획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하고 동시에 이번에 언급되지 않은 금융공기업 민영화, 금융감독체제 개선, 정부개혁 등도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5일 근무제,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 등은 경제상황을 보아가며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 투자자 불안감 해소해야 ▼

강조하건대 최근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에서도 보듯 우리 경제의 체질은 아직 취약하므로 구조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혁의 목표가 우리 경제의 경쟁력 제고임을 분명히 해 불필요하게 기업이나 일반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말고 개혁과 경제안정을 잘 조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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