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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3월 21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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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상 최대의 참화로 독일-소련전쟁(1941∼45)을 꼽는 데 주저할 이유는 없다.
소련측 사망자만도 큰 국가의 전체 인구와 맞먹는 2500만명에 이른다.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의 대공방전 두 달 동안 죽은 소련군 수는 제2차 세계대전 전 기간에 사망한 미국 영국군 수의 합과 거의 같다. 대전 중 독일군 희생자의 80%도 ‘동부전선’에서 발생했다.
이 전쟁은 중세 이전까지 일부에서나 통용되던 가장 야만적인 전쟁의 개념을 복원시켰다. 그것은 단지 점령하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말살전’이었다.
전사(戰史)연구자와 애호가의 두꺼운 층에 힘입어 이미 수많은 책이 이 전쟁을 다루고 있다. 런던대 킹스칼리지 역사학 교수인 이 책의 저자는 구소련 붕괴 후 입수 가능해진 풍부한 새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기존의 ‘독소전 전설’ 위에 새로운 빛을 던진다.
그에 따르면 ‘동장군이 독일을 물리쳤다’는 전설은 파기되어야 한다. 겨울 전투는 러시아인에게도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 ‘드넓은 동방의 배후지에 퍼져 있던 풍부한 인구가 소련을 구원했다’는 전설도 파기해야 한다. 동방은 땅만 넓을 뿐 사람은 적었다. 그렇다면 소련을 건져낸 구원의 손은 무엇으로부터 온 것일까.
★불타는 눈, 퀭한 눈…
TV 다큐 시리즈의 참여가 집필의 동기가 된 만큼 저자는 수많은 주(注)로 책을 무장한 속에서도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꼼꼼한 시선으로 전장의 모자이크를 맞추어 나간다.
책장을 넘기며 독자는 수많은 눈길과 마주치게 된다. 소녀의 퀭한 눈.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봉쇄 동안 인구의 3분의 1인 100만명이 굶주림과 추위, 질병으로 죽어갔다. 한 소녀의 일기는 가족 여섯 명의 죽음을 차례차례 그려낸다. 소련군은 라도가 호수의 얼음 위로 도로를 개설해 물자를 실어 날랐다. 그들의 투쟁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로 남았다.
복수로 불타는 눈. 독일군은 볼모로 잡은 부녀자들을 앞에 내세운 채 총을 쏘았다. 스탈린은 “감상주의를 버리고 받아 쏘라”고 명령한다. 독일군들은 반격하는 소련군들이 ‘황소같이 울부짖으며’ 달려왔다고 회상했다. 우크라이나의 독일 총독 코흐는 ‘나는 야수 같은 개다. 토착민을 최대한 가혹하게 눌러 짜라’고 지시한다. 빨치산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포로에 대한 대우는 사디즘적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게 됐다.
★전쟁의 문화경제학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기존의 ‘전투사’에 머무르지 않고 전쟁의 정치 경제 문화 경제적 측면을 고르게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적으로 이 전쟁은 ‘공산주의 전쟁’이 아닌 ‘민족전쟁’이었다. 민족을 넘어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를 찬양한 노래 ‘인터내셔널’은 전쟁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사라졌던 ‘조국의 어머니’상이 곳곳에 등장했다.
경제적으로는 현대의 다른 여러 전쟁처럼 많은 부분이 ‘석유전쟁’이었다.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가 함락을 면한 데는 석유가 풍부한 남부 공략에 히틀러가 주력했던 것도 큰 이유가 됐다. 결과적으로 남쪽의 스탈린그라드가 전쟁의 향방을 뒤집는 열쇠가 됐다.
★소련을 ‘변화시킬 수도’ 있었던 전쟁
정치적으로는 어떤 전쟁이었을까. 이야말로 앞서 제시한 질문, 즉 소련 승리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거듭된 패주 이후 붉은 군대에 일어난 ‘전쟁 방법의 심원한 변화’가 남은 전쟁의 방향을 완전히 되돌려놓았다고 분석한다. 서툰 전략가였던 스탈린이 주코프 등 뛰어난 무인에게 붉은 군대의 지휘권을 넘겨줌으로써, 독일군의 전략전술을 소련군이 역으로 학습해 심화함으로써, 경직된 소비에트식 계획 명령체제에 자율성이 도입돼 조직력과 유연성이 상승효과를 낳음으로써 소련은 구원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자율이 종전과 함께 끝난 것은 소련 및 그의 입김 아래 들어간 모든 나라의 비극이었다. 사회는 다시 엄혹한 명령체제로 돌아갔다. 주코프 원수는 한직으로 좌천됐다. 돌아온 포로들은 최고 25년의 수용소형을 언도받았다. 전쟁 중 독립을 꾀했던 우크라이나인에게는 피의 보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민족 전체가 유형을 떠난 체첸인들은 1956년에야 돌아왔다. 복원된 경직된 사회는 다시는 ‘유연한 사회’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승전의 종소리가 울려퍼진 46년 뒤 독일군도 내리지 못했던 크렘린의 소련 깃발은 마침내 끌어내려졌다.
원제 ‘Russia's War’(1997).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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