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40…입춘대길(1)

  • 입력 2003년 2월 11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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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액막음을 하느라 문기둥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꽂아두고 대문에는 <입춘대길>이라 쓰인 종이를 붙여 놓았건만 우리 대문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다.

강가 둔치에서는 처자들이 널뛰기를 하고, 동네 사람들은 어느 집 마당에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을 텐데, 우리 집 사람은 아무도 판에 끼지 않았다.

손위 친척집을 찾아가고 찾아온 손아래 친척을 대접하고, 어느 집이든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데 우리 집은 장남이 달리기를 하러 나가고 차남이 팽이치기를 하러 옆집에 갔을 뿐, 찾아오는 이가 한 명도 없다.

희향은 담장 밑에 떨어져 있는 복조리를 주워들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젊은이가 다섯이나 된다는 뜻인가? 알면서 “복조리 사려”하고 외치며 복조리를 담장 안으로 던졌다면, 해코지다. 이제 슬슬 복조리 값을 받으러 올 텐데, 어디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이걸 사서 부엌에 걸어두면 복이 온다고 하지만, 불과 석 달 사이에 딸과 남편을 앞세운 나에게 무슨 복이 오겠다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야 복이 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오늘밤은 첫닭이 울 때까지 안 자도 되제.

수세(守歲)니까네.

난 수세가 참말로 좋더라!

아처럼, 무슨 말이고.

그라믄 엄마, 내가 어른이가?

열세 살에 시집가는 경우도 있다.

나, 호롱불에 불붙이고 올란다.

아직 이르다, 해 떨어지고 나면 붙이라.

그란데, 왜 온 집안에 불을 켜둬야 하는데?

조상신이 돌아오는 날이라 그렇지.

그라믄, 왜 신발은 다 집안에 숨기는데?

귀신이 못 찾게 할라고 그라는 기지.

왜 귀신은 그믐날에 오는데?

아이고 왜 왜, 무슨 말이 그리 많노, 아처럼.

왜, 왜 하고 물으면 안 되나?

엄마 바쁘다. 입 좀 그만 놀리고 감자 껍질이나 벗기라.

알았다. 딱 하나만 더 물어도 되나?

그래, 손 안 비게 조심해라. 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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