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민동용/대화 없는 '지성의 전당'

  • 입력 2003년 2월 9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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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4시경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교정 연합신학대학원(연신원) 터. 지난달 27일 철거된 건물 앞에서 ‘차질없는 새 건물 건립’을 희망하는 이 학교 신과대 및 신학대학원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농성용 천막을 치고 있었다.

이들이 천막을 친 자리에서 약 10m 떨어진 곳에는 연신원 복원을 요구하는 ‘연신원지키기 및 에코캠퍼스를 위한 모임(이하 ‘모임’)’의 인문대 교수 수십명이 17일째 농성 중인 천막이 있었다.

신과대의 농성천막 안에서 한 교수는 “지난 40년 동안 이 터의 주인은 우리였는데 타 대학 교수들이 주인행세를 하며 천막도 제대로 못 치게 한다”면서 “농성 중인 ‘모임’측 교수들은 빨리 철수해야 한다”며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새 천막 주위에서는 신과대 교수와 대학원생 등 20여명이 서성대면서 ‘모임’측 천막을 흘끔 쳐다보곤 했다.

‘모임’측 천막에는 신과대측이 대응 천막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3명의 교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신과대 교수님들 너무하시는데…. 학교가 이렇게 나몰라라 방관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양측 교수들은 서로 상대방 천막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할말을 잊은 듯 깊은 한숨만 토해냈다. 이들은 기자에게 어떻게 되는 것이 도리에 맞는지 의견을 묻기도 했다.

하지만 두 천막의 어느 누구도 10m 떨어진 곳으로 가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40년 된 2층짜리 연신원 건물은 지난달 27일 오전 2시경 학교측의 용인 아래 시공사에 의해 전격 철거됐다.

이로부터 열흘이 지나는 동안 “연신원 복원”을 주장하는 ‘모임’측 교수들과 “새 건물 건립”을 주장하는 대학교 본부 및 신과대 교수들 사이에 조금의 대화와 양보도 없었음을 두 개의 천막은 입증하고 있다.

무너져 내린 잔해만 남아 흉물이 돼버린 연신원 건물 앞의 두 천막 사이에는 불신이라는 큰 ‘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이날 입학 등록을 마치고 교내를 둘러보던 새내기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천막 앞을 지나갔다.

민동용 사회1부 mi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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