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23…몽달귀신(25)

  • 입력 2003년 1월 21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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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근은 엄마가 놓은 손에 힘을 주고 주먹을 쥐었다. 열흘 이상이나 깎지 않은 손톱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괜찮나?”

귀를 막고 있어서 들리지 않는 것일까? 그래도 저 쪽 귀는 막지 않았다. 빗소리가 시끄러워서인가?

“엄마!”

희향은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떨구고 귀에서 손을 뗐다.

“귀가 아프나?”

“아니다 괜찮다…미안타…누나 생각이 나서…누나가 비에….”

희향은 곱은 손으로 곱은 아들의 손을 잡고 둑을 올라갔다.

삼나무가 희향의 눈과 발길을 가로막았다. 멈춰 서서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아들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희향의 발은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사립문은 끈이 끊어져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 문을 밟고 희향과 우근은 폐옥의 마당으로 발을 디밀었다. 희향은 온 신경이 어둠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느꼈다, 말미잘의 촉수처럼 흐늘흐늘거리며.

집은 어둠과 적막함과 차가움을 견디느라 몸을 움츠리고, 오래도록 사람이 살지 않아 눅눅한 곰팡내를 풍기고 있었다.

그 여자는 딸을 낳고 삼칠일도 치르지 못하고 이 집을 떠나, 숙모에게 맡겨두었던 동아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은 변함없지만, 여자 걸음으로는 족히 10분은 걸린다. 이렇게 가깝지는 않다, 이렇게….

투득 투드득, 젖은 삼나무 가지에서 굵직한 빗방울이 우산으로 떨어졌다. 희향은 우산을 뒤로 젖히고 삼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좍-좍, 이 마당에서는 빗소리마저 조용하게 들린다. 좍-좍, 희향에게는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 멀리 있는 곳처럼 여겨졌다. 그 여자가 여기서 살았었다는 것도, 그 사람이 매일 이 곳을 드나들며 그 여자를 안았다는 것도, 그 여자가 그 사람의 딸을 낳았다는 것도, 모든 것이 지나간 일인데, 나만, 나만 끝나버린 이야기 속에 그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다. 이런 전개가 아니었다. 그 사람이 그 여자와 헤어져서 내게 돌아온 그 때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였는데…이런 예정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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