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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월 2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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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가득 메운 3만여 시민 대부분은 2시간여 동안 숨진 여중생들을 추모하며 대등한 한미관계의 정립을 촉구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직후 거리는 갑자기 ‘어지러운’ 모습으로 돌변했다. 범대위 소속 회원들과 한총련 소속 대학생 등 3000여명이 주한 미국대사관으로 진출하기 위해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시작한 것. 이들을 지휘하는 확성기 소리와 대학생들이 미리 준비해온 수십개의 깃발이 어지럽게 허공을 갈랐다. 시위대 일부는 길을 막고 늘어선 경찰버스를 타고 넘어가려는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주최측이 그토록 강조하던 평화시위가 폭력시위로 변질되는 순간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몇몇 시민들은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이날의 촛불시위 자체는 불법이다. 사전에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하지 않은 데다 설혹 신고를 했다 하더라도 해가 진 뒤 야외 집회를 하는 것은 금지돼 있기 때문. 그런데도 경찰은 이날의 시위를 ‘묵인’했다.
아마도 촛불시위가 평화적 추모 모임이었고 국민적 관심도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날 시위를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는 촛불시위가 일부 세력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날 경찰은 1만3000여명의 전경과 버스 350여대를 동원해 세종로와 미 대사관 주위를 철통같이 에워싸 시위대의 접근을 봉쇄했다. 문제는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은 시민들이 빠져나갈 틈조차 주지 않았던 것. 이날 저녁 늦게까지 세종로를 빠져나가지 못한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신문사에 쏟아졌다. 불법 시위를 묵인하면서 다수의 시민들에게 불편을 강요한 것이 경찰 본연의 자세는 아니다.
시민들은 평화시위가 폭력시위로 변질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고 경찰이 이들에 대해 그토록 관대한 이유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있다.
민동용기자 사회1부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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