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용옥/제4세대 전쟁

  • 입력 2002년 12월 29일 17시 58분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는 유일 초강국 미국에 대한 가공할 테러공격을 목격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수단과 방법으로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심장부를 강타한 기습공격이었다. 공격행위자의 실체도 불분명했고, 선전포고도 없었다. 따라서 사전 조기경보도, 예방조치도, 억제대책도 모두 불가능했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불확실했다. 어떤 사람은 9·11테러를 21세기 시작과 함께 쏘아 올려진 ‘제4세대 전쟁(fourth-generation war)’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도 말한다.

▷전쟁사가들은 17세기 중엽 민족국가 형성 이후의 현대전 양상을 대략 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제1세대 전쟁’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폴레옹 전쟁’ 양상을 연상하면 되고, ‘제2세대 전쟁’은 장기적으로 병력과 물자를 대량 소모한 미국 남북전쟁이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제3세대 전쟁’은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신속한 기동과 기습을 특징으로 하며,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전격전 양상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9·11테러로 상징될 수 있는 ‘제4세대 전쟁’ 양상은 군사력 균형, 억제전략, 전술교리, 교육·훈련, 장비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사고와 발상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해 온 정규전 양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 전쟁에는 인도주의란 애당초 없다. 군인과 민간인, 군사시설과 비군사시설의 구분도 없으며, 전선도 없다. 오직 상대방에게 최대의 인적 물적 피해와 심리적 충격, 그리고 사회적 혼란을 가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만이 강구된다. 이런 뜻에서 ‘비대칭 전쟁(asymmetric war)’이라고도 하고,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라고도 부른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제4세대 전쟁’ 대비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이 수행 중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에 대한 선제군사공격 계획도 궁극적으로는 이 ‘제4세대 전쟁’ 위협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려는 군사조치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군사적 수단만으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군사적 수단도 필요하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폭탄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상대방 전사들에게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도 이 새로운 시대적 도전에 적극 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제4세대 전쟁’ 대비태세가 궁금하다.

박용옥 객원논설위원 전 국방부 차관

yongok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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