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탁문화 사라지려면

  • 입력 2002년 12월 27일 18시 20분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청탁을 없애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부정한 청탁이 사회 구성원들의 기회 형평성을 박탈한다는 차원에서 노 당선자의 발언은 긍정적이다. 다만 표현 그대로라면 법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남는다.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할 것’이라는 언급은 구시대의 연좌제를 연상케 한다. 또 청탁하는 기업과 개인에 대해 특별세무조사를 경고한 부분은 세무조사가 처벌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차원에서 다소 과격한 표현이 아니냐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당선자가 이렇게 얘기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청탁문화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인사청탁 이권청탁 수사청탁에 이르기까지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청탁이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다. 청탁에는 반드시 ‘검은 뒷거래’가 따른다. 현 정권하에서 터진 각종 게이트도 그랬듯이 모든 권력형 비리나 부정부패는 청탁과 연결돼 있었다.

특권층을 중심으로 한 청탁 때문에 사회적 불만이 높았던 것을 고려할 때 이런 분위기는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은밀하게 이뤄지는 청탁의 속성상 적발과 응징은 쉽지 않다. 청탁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려면 권력의 토양부터 바꿔야 한다. 종횡으로 촘촘히 얽힌 연고주의를 혁파해 청탁의 통로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우선이다.

결국 다시 측근정치와 정실인사의 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권력집단 내에서 영향력이 큰 실세가 있으면 자리나 이권을 탐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연고를 동원해 접근하는 게 상례다. 그리고 ‘형님 동생’ ‘선배 후배’ 하면서 서로 어울리다 보면 신세를 지고 갚고 하다가 ‘청탁과 보상의 그물’에 걸려들 가능성이 크다. 권력에 취하면 유혹에 약해지게 마련이다.

벌써부터 선거공신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멤버를 비롯한 새로운 권력집단 주변에 공무원 줄서기가 극심하고 온갖 청탁이 쇄도한다니 걱정이다. 노 당선자는 청탁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먼저 측근들의 제 사람 심기나 인사청탁부터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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