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잘못된 만남, 경박한 결별

  • 입력 2002년 12월 19일 01시 12분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표가 대통령선거 전날 밤 전격적으로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와의 공조 파기 및 지지 철회를 선언함으로써 대선 판도에 대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대전에서의 첫 공동유세 후 불과 5일 만의 일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공조파기 선언 직전까지도 손을 맞잡고 합동유세를 벌여 유권자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했다.

국가최고지도자를 뽑는 대선이 이처럼 마지막까지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혼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정치의 가벼움 때문이다. 서로 정책과 이념이 달라도 정략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합쳤다 이해가 틀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갈라서는 분별없는 이합집산이 정치판을 끊임없이 요동치게 하고 있다는 얘기다.

통합21의 공조파기 이유를 살펴보면 이 같은 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노 후보가 서울 명동유세에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고 한 말이 ‘양당간 합의된 정책공조 정신에 어긋나는 발언’이라는 게 공식적인 이유다. 그러나 이 정도의 노선 차이는 양당간 공조합의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점에서 애당초 공조 자체가 무리였음을 자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공조파기는 예고된 파탄이었던 셈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통합21측이 노 후보를 향해 ‘배신과 변절’을 언급한 대목이다. 이는 다음 대선과 관련한 노 후보와 정 대표간의 ‘밀약’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실제로 통합21이 밝힌 명목상의 이유보다는 종로유세에서 한 청중이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노 후보가 “속도위반하지 마시오”라고 말한 것이 공조파기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헤아릴 수 있다.

만약 밀약이 있었다면 노 후보와 정 대표의 만남은 처음부터 유권자 기만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끝내 ‘한판의 쇼’로 끝나 버린 후보단일화와 대선 공조로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한 데 대해 그들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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